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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기속시 20수 〔歸川紀俗詩 二十首〕/ 김윤식(金允植)

淸潭 2025. 5. 12. 17:34

귀천기속시 20수 〔歸川紀俗詩 二十首〕/ 김윤식(金允植)

운양집 제1 / ()○격경집(擊磬集) 갑인년(1854, 철종5)에서 갑자년(1864, 고종1)까지 귀천(歸川) 천운루(天雲樓)에서 지었다.

귀천기속시 20수 〔歸川紀俗詩 二十首〕

 

두릉(斗陵)의 정소운(丁小耘)이 〈두릉기속(斗陵紀俗)〉 절구 20수를 지었는데, 매 편마다 《시경》과 《초사》에 넣을 만했다. 나에게 보여주며 화답을 구하기에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의 처소는 한 줄기 물로 떨어져 있을 뿐이라네. 두곡(杜曲) - 두릉을 두곡(杜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과 위곡(韋曲)은 풍토(風土)가 다르지 않고, 초계(苕溪) - 귀천(歸川)을 우천(牛川)이라고 섞어서 부르고, 소천(蘇川)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계(蘇溪)는 혹은 초계(苕溪)라고 바꾸어 부른다. - 와 삽계(霅溪)는 사람들의 풍상이 같을 것이네. 강가 삶의 빼어난 구경거리를 그대의 아름다운 시에서 다 표현했으니, 나는 농사짓고 양잠하는 일이나 대추와 밤 같은 농작물에 대해서 보완해보겠네.”

 

숲 저 멀리서 노래하고 달은 가득 찼는데 / 林外行歌月正圓

줄다리기 마치고 나니 들불이 이어지네 / 拔河戲罷野燒延

대보름 밤 줄다리기는 당나라 풍속 발하희(拔河戲)이다. 들불은 곧 옛날 당나라 때의 산등(山燈)이다.

늙은 농부는 총명주에 취해 드러눕고 / 老農醉臥聰明酒

웃으며 산봉우리 가리키고 풍년 든다 말하네 / 笑指峯頭說有年

마을 풍속에 대보름 밤의 음주를 총명주(聰明酒)라고 부른다. 노인의 귀가 다시 밝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대보름 밤 달이 상중하 세 봉우리 중 어디로 떠오르는가를 보고서 한 해의 풍흉을 예측한다.

위는 상원(上元)에 풍년 점치는 것을 읊은 것이다.

 

서쪽 개울서 캔 미나리 치마를 다 못 채우고 / 采芹西澗不盈襜

까마귀부리 같은 향그런 싹을 손으로 땄네 / 烏觜香芽入指尖

누이는 응당 시집살이 고통을 알 테니 / 阿妹應知新嫁苦

매운 고추인들 시집살이 엄함만 할까 / 辢椒爭似舅家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채근요(采芹謠)〉가 전하는데, 아래 2구는 곧 그 노래의 가사이다.

위는 봄날 여자가 나물 캐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우산의 봄비 속에 도끼로 나무 해다가 / 牛山春雨斧斤餘

엮어 만든 성근 울타리 노루 눈처럼 생겼네 / 編作疏籬麂眼如

우산(牛山)은 귀천(歸川)과의 거리가 20리인데 촌민들이 땔나무를 하는 곳이다.

반쪽 밭두둑이나마 씨 뿌릴 땅이 있어 / 猶有半畦栽種地

삼 할은 옥수수 심고 칠 할은 채소 심었네 / 三分玉秫七分蔬

위는 봄날 민가에서 울타리 엮는 것을 읊은 것이다.

 

곰방메 써레 종다래끼 메고 앞 두렁으로 가니 / 耰耙耬斗度前阡

여러 식구 먹고 살려고 돌밭을 빌렸네 / 數口生涯賃石田

봇도랑과 밭두둑 정리하며 일 쫓기 바쁘나니 / 整頓溝塍趨事急

부지런히 일해야만 주인집 동정을 얻으리 / 辛勤庶得主家憐

이 시골은 땅이 귀하고 백성들은 가난하여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다. 약간이라도 게으르면 주인이 땅을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준다.

위는 봄날 촌민들이 땅을 빌려 씨앗 뿌리는 것을 읊은 것이다.

 

빨래하고 돌아오니 점심밥 준비 급한데 / 洴澼歸來午

젖은 땔나무에 불 붙여도 불 일지 않네 / 濕薪吹火不成灰

시집와서 농촌 아낙이 된 이후로 / 自從嫁作田家婦

허리둘레 가늘어져 옛 옷을 줄였네 / 瘦着圍腰減舊裁

인근 마을 어부 집의 여자가 처음에는 자못 예뻤는데, 이 마을로 시집오자 초췌해졌으니 농사일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위는 촌 아낙이 밭에 들밥 내가는 것을 읊은 것이다.

 

따뜻한 구름 분가루 같고 물은 넓게 펼쳤는데 / 暖雲如粉水平鋪

산새가 창에 날아와 옥호를 권하네 / 山鳥當窓勸玉壺

보리 철 조금이라도 늦으면 춘궁기가 닥치니 / 麥候差遲春窘迫

위소주(韋蘇州 위응물(韋應物))의 시에춘궁기가 절박한 탓에, 때를 놓치면 김매지 못하네.〔直以春窘迫 過時不得鋤〕라고 했다.

작은 솥에 납가새와 줄풀을 삶아먹는다네 / 小鐺熟野茨菰

위는 봄의 끝에 전가(田家)의 굶주린 기색을 읊은 것이다.

 

쟁반에 쌓인 상추 쌈밥도 신선해라 / 盤堆萵苣菜包新

서진명(徐振明)의 〈궁사(宮詞)〉에흑미로 포아희를 만드네〔靑精飯作包兒戲〕”라는 구절이 있는데, ()에 이르길, “4월에 상추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을 포아희반(包兒戲飯)이라 한다. 지금 도성에서는 속칭 타채포(打菜包)라고 한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 풍속에도 또한 상추로 밥을 싸먹는 일이 있다.

느릅 잎으로 떡을 찌니 초파일이로세 / 楡葉蒸浴佛辰

4 8일을 욕불일(浴佛日)이라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서는 이날 등불을 매달아 놓고서, 콩을 삶고 느릅잎 떡을 쪄서 등불 매단 나무 아래 모여서 술을 마신다. 경성의 등불은 자못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시골은 새벽별처럼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울타리 밖에 짧은 장대를 기대놓고 / 扶起小竿籬落外

자원의 등불 파는 사람을 자주 부르네 / 頻呼瓷院賣燈人

위는 4월 초파일 촌가(村家)의 현등(懸燈)을 읊은 것이다.

 

누런 보리 다 베어낸 자리에 벼가 푸릇푸릇 / 黃雲割盡稻靑靑

여럿이 휘두르는 호미질에 힘도 들지 않네 / 百指揮鋤着力輕

마을 집엔 사람 없어 낮에도 적막한데 / 里舍無人晝涔寂

낮닭이 날아올라 지붕 끝에서 우네 / 午鷄飛上屋頭鳴

위는 한 여름에 김매는 것을 읊은 것이다.

 

갑자일에 부슬부슬 빗발이 어지럽더니 / 甲子濛濛雨脚迷

오장이 하룻밤 새 산과 나란해졌네 / 烏檣一夜與山齊

《조야첨재(朝野僉載)》에속담에여름 갑자우(甲子雨)에 배를 타고 시장으로 들어간다.’라고 했다.”라고 했다.

높이 올라 파도 잠든 것을 서로 축하하니 / 登高共祝波濤穩

척박한 땅이 이제부턴 진흙이 될 것이라고 / 瘠壤從今變淤泥

위는 여름날 강이 범람하여 촌마을 집이 잠긴 것을 읊은 것이다.

 

한씨 집 담배는 그 맛이 진귀해 / 韓家草味珍奢

사람들은 동릉 소씨의 오이에 견주네 / 人比東陵邵氏瓜

족맥청부를 한 아름 실어오니 / 足陌靑蚨輸一

비옥한 밭에 더 이상 뽕과 삼을 심지 않네 / 膏田無復種桑麻

위는 한씨가(韓氏家)의 담배 밭을 읊은 것이다.

 

오월은 지루하고 칠월은 바쁜데 / 五月支離七月忙

호미 걸어두고 시원한 버들 그늘에 한가로이 누웠네 / 掛鋤閑臥柳陰凉

전가(田家)의 속담에 “5월은 더디가고 7월은 바쁘다.”라는 말이 있다. 또 전가에서는 7월을 속칭 괘서절(掛鋤節)이라 한다.

산 옆으로 해 저무니 소 발걸음 어지럽고 / 山邊日暮牛蹄亂

쓸쓸한 안개비에 한 줄기 피리 소리 들려오네 / 煙雨蕭蕭一笛長

위는 초가을에 김매기 마친 것을 읊은 것이다.

 

명월암 앞에 달그림자 어지러운데 / 明月庵前月影紛

백중날 남녀가 함께 난분을 바치네 / 中元士女供蘭盆

아반제자 그 목소리 묘한데 / 阿潘弟子喉音妙

정성껏 주문 외며 세존에게 절하네 / 深深拜世尊

위는 백중날 밤에 암자의 비구니가 불사(佛事) 지내는 것을 읊은 것이다.

 

푸릇 누릇 들판에 참새 떼 많아서 / 野色靑黃鳥雀多

아이 시켜 웃배미 벼를 살피게 하네 / 敎兒去看上坪禾

쫓아도 가지 않으니 아이 마음 괴로워라 / 驅之不去兒心苦

종일토록 울며 소리친들 너희들을 어찌하랴 / 盡日啼號奈爾何

위는 가을 논에서 참새 쫓는 것을 읊은 것이다.

 

송편에 솔막걸리 팔월의 중순이라 / 松醪八月中

농촌에 가절이 찾아오니 풍년을 기뻐하네 / 稻鄕佳節喜成功

집집마다 제사상 차리느라 새벽 등불 푸른데 / 家家設祭晨燈碧

세속의 예법 성묘 풍속이 도리어 부끄러워라 / 俗禮還羞上墓風

8 15일은 추석절(秋夕節), 농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떡과 대추와 밤 등으로 조상에게 제사 지낸다. 송편은 그 절기의 음식이다. 나라 풍속에 한식(寒食)과 추석에 모두 묘제(墓祭)를 지내는데, 이는 옛 제도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묘소에 올라서는 청소만 하는 것이, 도리어 옛 제도에 부합할 것이다.

위는 추석에 선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읊은 것이다.

 

두렁 위 목화밭에 석양이 차가운데 / 陌上棉田淨夕暉

가을 되어 다 따버리고 남은 꽃 드무네 / 秋來摘盡見花稀

때때로 남겨진 솜이 바람 맞아 나오면 / 時看遺絮臨風吐

남쪽 이웃 과부 베틀로 들어간다네 / 收入南隣寡婦機

위는 과부가 솜을 줍는 것을 읊은 것이다.

 

흰 구름 속 땔나무 밭에서 나무하여 돌아오니 / 白雲養裏採薪回

육구몽(陸龜蒙)의 시에푸른 벼랑 가에서 태어나서 흰 구름 속 땔나무 밭을 능히 아네.〔生自蒼崖邊 能諳白雲養〕”라고 했는데, ()에 이르기를, “산가(山家)에서는 땔나무 자라는 곳을 일러()’이라 한다.”라고 했다.

강물 차고 가을 깊어 장삿배를 재촉하네 / 江冷秋深賈帆催

곧바로 어깨 붉어지고 나무 한 손가락 벗겨져도 / 直到肩樵指禿

올해엔 득전 받아오기에 충분하겠네 / 當年恰受得錢來

마을 사람들은 봄에 땔감 장수들에게 쌀과 돈을 꿨다가 가을에 땔나무를 베어다 갚는다. 그 중 부지런한 자는 빚 갚음을 이미 마치고 남는 것으로 값을 받는데, 이를 일러득전(得錢)’이라 한다.

위는 가을 겨울 즈음에 땔나무를 해다가 배에 나르는 것을 읊은 것이다.

 

촌가의 예속엔 경박함과 순박함이 뒤섞여서 / 村家禮俗雜澆淳

베껴온 의례문을 사방 이웃이 함께 쓰네 / 鈔寫儀文共四隣

대상ㆍ소상 돌아오면 서로 와 제사 돕고 / 每値祥朞來助祭

언변 좋은 공축은 글자 아는 사람일세 / 便便工祝解書人

촌가에서는 우리말로 상제(喪祭)와 혼의(昏儀)를 베껴두는데, 매번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 마을에서 빌려다가 사용한다. 또 언문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데려다가 축문을 읽게 하는데, 읽는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촌민들의 대상(大祥)과 소상(小祥) 때에는 온 마을 사람이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모여서 제사를 마치면 차례로 들어가서 조문하고, 주인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한다.

위는 촌가의 상제(祥祭)를 읊은 것이다.

 

어려서는 장난치며 놀다 어른 돼선 서로 친해 / 幼相戲狎長相親

한 집안에 계를 맺으니 의기가 새롭네 / 修稧同堂意氣新

양자를 맺어 그 위세 빙자하려 함 아니니 / 非爲假兒聲勢藉

이웃 긍휼히 여김은 한 동포로서의 인애일 뿐 / 恤隣自是共胞仁

당나라 말에 환관과 변방 장수들은 많은 양자를 들여 세력을 키웠는데, 많은 경우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 고을에 종부형제(從父兄弟) ()가 있는데, 부모가 죽으면 곗돈을 거두어 장례를 돕는다. 계를 맺은 사람들은 모두 흰색 관()을 쓰고 베 허리띠를 두른 채 상여를 전송한다.

위는 겨울에 계() 맺는 것을 읊은 것이다.

 

웅얼웅얼 겨울 공부 소리에 앞마을 시끄럽고 / 唔冬學前村

등걸불 타는 화롯가에서는 강설하느라 정신없네 / 爐頭講說煩

밤 깊어 자려는데 목이 바싹 타면 / 夜久欲眠喉吻燥

눈 속의 차가운 동치미를 씹어 먹는다네 / 雪中咬破冷

눈 속의 동치미를 씹어 먹는 것은 소이간(蘇易簡)의 고사를 사용했다. 겨울밤 독서는 최고가는 상쾌한 맛이다.

위는 동쪽 이웃의 겨울 공부를 읊은 것이다.

 

초가 처마의 눈보라에 아이 추울까 근심인데 / 茅簷風雪念兒寒

어스름 저녁에 두미강 가에 낚시 드리웠네 / 薄暮垂綸斗尾干

영감 할멈 웃으며 만년의 복 칭송한다네 / 翁媼解稱晩福

왕상의 얼음 판 잉어가 소반에 오르리니 / 王祥氷鯉也登盤

위는 깊은 겨울에 두미(斗尾)에 가서 잉어 낚는 것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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