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사(流水辭)
유수사(流水辭)
이색(李穡)
물은 오직 아래로만 흘러 / 水之趨兮惟下
백 번 꺾여도 그냥 내리네 / 日百折兮不舍
바다에 들지 않곤 어느 웅덩이엔들 멈추리 / 不入于海兮何科之停
웅덩이를 채우고는 나아가니 / 盈必進兮
누가 그 멍에를 풀어 쉬게 할꼬 / 誰稅其駕
길가 구덩이에 고인 물도 근원이 없지 아니하여 / 彼行潦之靡不源兮
한 여름 비에 위력을 뽐내나니 / 尙逞威於大雨之炎夏也
금방 말라질 듯하다가 곧 이어지니 / 勢暫似兮旋踵
어리석은 자에 자랑할 만하네 / 猶足夸於鄙者也
우물을 쳐 깨끗이 한 물을 내 어이 먹지 않으랴 / 吾寧不食於井之渫兮
하늘의 해와 별이 거꾸로 비쳤구나 / 大虛日星之倒寫也
더러운 잡물이 안 섞인 물을 / 矧雜穢之不并兮
왜 쳐 내며 왜 쏟아버릴꼬 / 夫何滌而何瀉也
막다른 항구에 항행치 마소 / 毋航斷港兮
막힐까 두려워하네 / 恐其窒也
약수를 밟지 마소 / 毋踵弱水兮
빠질까 두렵네 / 恐其溺也
이에 종장(終章)으로 이르노니 / 迺從而亂之曰
천성이 하나인데 선ㆍ악이 어찌나 상대되나 / 性一兮淑慝之胡形
재주는 하나인데 취하고 버림에 걸리누나 / 才一兮取舍之是嬰
시냇물 샘물은 졸졸 / 澗泉之幽幽
강과 바다는 출렁출렁 / 江海之冥冥
내 그 가운데 노래하니 / 我歌其中兮
귀밑 털 희끗희끗 / 鬢毛之星星
천 년 뒤에 오는 사람 / 千載有人兮
귀 있거든 들으소 / 有耳其聆
[주-C001] 사(辭) :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주-D001] 웅덩이를 …… 나아가니 :
물은 웅덩이에 찬 뒤에 나아간다[盈科而後進]. 과(科)는 구덩이[坎]의 뜻. 《맹자》
[주-D002] 누가 …… 할꼬 :
달리는 말의 멍에를 풀어 쉬게 함. “사물이 극하면 쇠하나니, 나는 멍에를 풀 바를 모르노라[物極則衰 吾未知所稅駕也].” 《사기》
[주-D003] 우물을 …… 물[井渫] :
우물이 이미 준설(浚渫)됨. 스스로 몸가짐을 깨끗이 함의 비유. 설(渫)은 더럽고 흐린 것을 쳐 버려 깨끗이 함이다. 《주역》 정괘(井卦)에 “깨끗한 우물 물 먹지 않으니 마음 슬프다[井渫不食 爲我心惻].” 하였다.
[주-D004] 약수(弱水) :
부력(浮力)이 약하여 새 털도 가라앉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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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본국에 사신 떠나는 정몽주(鄭夢周 字는 達可)를 보내며[東方辭]
이색(李穡)
저 동방에 임금 있어 / 詹東方之有君兮
태고로부터 자존했네 / 肇大始以自尊也
그 사람들이 의와 인을 숭상하고 / 其人佩義而服仁兮
기는 세차고 말은 온순했었네 / 厥氣勁而詞溫也
그러나 그 뒤 세도가 변천하매 / 越世道之升降兮
강렬만을 숭상하여 / 尙剛烈而專門也
걸핏하면 목숨 버림이 / 其輕生而敢死兮
북궁유(北宮黝)로도 못 비길지라 / 何北宮黝之足言也
주말 전국을 본뜬 풍속 / 倣周季之戰國兮
오싹 소름이 끼치고 간담을 서늘케 하네 / 凜凜乎使人毛竪而驚魂也
던져 주는 밥 먹지 않고, 눈 흘김도 원수를 갚아 / 嗟來不食兮睚眦必報
아비와 형도 모르거니 자식ㆍ손자 아랑곳할까 / 上忘父兄兮下忘後昆也
하물며 처자와 하인들을 / 矧妻孥與輿臺兮
보기를 개돼지만도 못하고 / 視之不啻犬豚也
이 몸이 시어져도 / 蓋此身兮澌盡
이름만은 남긴다네 / 羌名譽兮求存也
선비는 죽일지언정 / 士可殺
욕되게는 못할것이요 / 不可辱兮
의관으로 욕 다함은 나라의 치욕이로세 / 辱衣冠痛在國也
이렇듯 백성을 가다듬어 풍습을 길렀으니 / 劘于民而陶俗兮
그들로선 그럴듯한 일, 무엇을 책할쏘냐. / 亦其宜而何責也
사물이 극하면 반드시 변하는 법 / 極而罔有不變兮
예양의 풍속이 혹 금시 이뤄질 듯 / 揖讓或在於旦夕也
중국의 의관은 몇 번이나 제도가 바뀌었으나 / 中華衣冠之幾更制兮
우리는 아직 옛날 그대로이네 / 我迺猶夫古昔也
천하 만국이 모두 서로 교통하건만 / 舟車所至之必通兮
우리는 아직 문턱을 넘은 일도 없네 / 我迺足不踰閾也
해 뜨는 곳의 천자가 / 日出處之天子兮
부상 땅에 터전을 잡았도다 / 奄宅扶桑之域也
원래 만물이 자라고 큼은 / 惟萬物之生育兮
동풍이 따스하게 불어 주는 때문이요 / 迺谷風之習習也
온 누리를 환하게 내리비춤은 / 惟下土之照臨兮
저 햇님이 혁혁히 떠 있음이라 / 迺陽烏之赫赫也
이 두 가지가 나오는 고장은 / 之二者之所出兮
과연 천하 무적의 나라이건만 / 信天下之無敵也
어쩌다 군흉들이 틈타 내달아 / 胡群兇之竊發兮
지금껏 저렇게 창궐하였는가 / 至于今其猖獗也
악명을 천하에 뿌리고 죄가 이미 극도에 이르니 / 播惡名於天下而旣稔兮
지사ㆍ인인들이 모두 동방을 위하여 애석히 여기네 / 志士仁人莫不爲東方惜也
이는 천하의 전쟁을 불러 일으킬 징조 / 是將動天下之兵端兮
의심 없으니 점칠 것도 없네 / 不疑又何卜也
볼과 턱뼈는 서로 의지하는 것 / 輔車相依兮
우와 괵이 거울이요 / 虞虢是監
초나라가 잔나비를 잃으면 화가 온 수풀에 미치는 법 / 楚國亡猿兮禍林木也
교빙을 하면서도 진정으로 하잖으면 / 旣交聘兮或不以情
위에 계신 신명이 정직히 감찰하시리 / 上有神明兮司正直也
이제 그 권이 그대에게 있으니 / 今其權兮有所在
그대는 음식을 부디 삼가고 / 子其愼兮飮食也
일상 생활에 생각을 줄이세 / 少思慮兮興居
건강을 보전하여 그 직책을 다하소 / 保厥躬兮供厥職也
서투른 나의 글이 필력이 쇠했으니 / 謇予詞兮筆力衰
말은 끝났어도 뜻은 그지없사외다 / 言有盡兮意無極也
[주-C001] 사(辭) :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주-D001] 저 동방에 …… 자존(自尊)했네 :
일본 고대의 군주(君主)가 그 지리적 특수성에 의하여 자존이 세었다.
[주-D002] 북궁유(北宮黝) :
전국 시대의 역사(力士)로 남에게 지지 않고 임금 찌르기를 거지 찌르듯 하던 자.
[주-D003] 던져 …… 않고 :
제(齊)나라 검오(黔敖)는 흉년에 밥을 지어서 길가에 왕래하는 굶주린 사람을 먹이는데 어느 한 사람이 굶주려서 기운 없이 오는 것을 보고, “아아, 불쌍하다. 와서 먹어라.” 하니, 그 사람은, “나는, ‘불쌍하다, 먹어라’하는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면서 먹지 않았다.
[주-D004] 해 뜨는 곳의 천자 :
일본이 수(隋)나라에 보낸 맨처음 국서(國書)에, “해 돋는 나라의 천자가 해 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보내는 글[日出處天子 奇書日沒處天子].”라 해서 수나라 황제가 불쾌히 여겼다. 《수서(隋書)》
[주-D005] 부상(扶桑) :
동방 신목(神木) 이름. 전(轉)하여 일본을 가리킨다. “양곡(暘谷)에 부상이 있으니 열 해[日]가 멱감는 곳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徑) “부상은 푸른 바다 가운데 있으니 키가 몇천 길, 천여 아름인데 해 뜨는 곳이다.” 《십주기(十洲記)》
[주-D006] 볼[輔]과 …… 것 :
보(輔)는 협보(頰輔) 곧 볼, 거(車)는 아거(牙車) 곧 아래턱뼈,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좌전》희공(僖公) 5년에, “속담에 이른바, ‘꼴과 턱뼈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차다.’는 말을 우(虞)와 괵(虢)을 두고 이름이다.” 하였다.
[주-D007] 우(虞)와 …… 거울이요 :
춘추(春秋) 때에 진후(晉侯)가 우(虞)에게 길을 빌어 괵(虢)을 멸하고 나서 군사를 돌이켜 오는 길에 또 우를 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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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송사(自訟辭)
이색(李穡)
네 몸집이 작고 못 생겨 / 汝之軀矮而陋兮
남이 보면 금방 넘어질 듯 하다네 / 人視之若將仆也
시력이 짧고 귀가 어두우니 / 視旣短而聽又瑩兮
사람의 소리 나면 좌우로 돌아본다 / 中人聲而左右顧也
놀란 사슴이 저자에 들어가듯 / 驚麕駭鹿之入于市兮
누가 벗하여 상종하리 / 孰肯從而相友
잠깐 모여서 친우가 되어도 / 雖幸聚而乍成懽兮
돌아서면 금방 욕지거리 / 倐背焉而旋詬
폐부의 고기를 내어 좋아하재도 / 出肺腑肉以求可兮
다른 데로 획 달려 만날 수도 없고 / 藐異馳而莫之遇
부드러운 얼굴, 달콤한 말로 / 柔爾顔兮甘爾言
진정을 쏟아 연해 토하여도 / 瀉眞情之繼吐
마치 북으로 가는 수레로 초를 가는 듯 / 猶北轅而適楚兮
누가 내 화살에 촉이 되며 깃이 되리 / 夫誰鏃而誰羽
근심ㆍ설움을 어느 곳에 하소연하랴 / 舒憂娛悲之何所兮
넓고도 넓은 망망한 하늘뿐 / 豁茫茫其天宇
정다운 친지들도 흩어져서 / 惟情親之乖離兮
저녁 구름, 봄나무 아득하네 / 杳暮雲而春樹
천지 사이에 이내 몸 두고 보니 / 觀吾身於霄壤兮
아홉 마리 소의 털 하나인 듯 / 吹毛一於牛九
누가 나를 그 대열에 끼워줄는지 / 疇其置齒牙閒兮
그것을 알 수 없네 / 抑難知其所否
나의 덕이 잡되지는 않았는가 / 豈予德之回譎兮
내딴에 순일함을 품고 있는데 / 予則懷其純一也
혹 나의 행실이 심히 괴벽함인가 / 豈予行之奇邪兮
내딴엔 정직하다고 보는데 / 予則視其正直也
혹 나의 말이 간사함인가 / 豈予言之訐詐兮
나는 성실을 숭상하는데 / 予則師其悃愊也
혹 나의 학이 거칠은 건가 / 豈予學之鹵莾兮
나로서는 극치에 이른 것인데 / 予則底于其極也
혹 나의 정사가 흠이 많은가 / 豈予政之多疵兮
나는 승묵을 꼬박꼬박 따르는데 / 予則蹈夫繩墨也
오직 나는 허둥지둥 낭패하여서 / 惟吾之顚頓狼狽兮
외곬으로 선을 주장할 줄 모르는 것 뿐 / 莫知主善之克一也
하나만 고집하고 타협 모르면 / 夫惟一之罔知恊兮
금수와 무엇이 다르리 / 禽獸之歸而何擇
인인이 나를 사람으로 치지 않음이 마땅하건만 / 宜仁人之不齒兮
속여 사는 건 곧 적이네 / 罔之生也是敵
어찌 일찍 반성치 아니했던가 / 胡反觀之不蚤兮
하나님 환히 내려 보시네 / 上帝臨之而赫赫也
올바르게 예를 지켜서 / 其循循而蹈禮兮
지척도 어김 없으리 / 則不違於咫尺也
죄를 알아 사과를 하면 / 引罪辜以謝過兮
누가 지난 일을 다시 책하랴 / 孰旣往之追責
나를 칭찬한들 어찌 기뻐하며 / 貸予褒兮何欣
나를 훼방한들 어찌 두려워하랴 / 附予毀兮何怵
백관의 반열 속에 조용히 서서 / 雍容袍笏之班兮
이것저것 모르고서 임금의 법을 순종하려네 / 不識不知而順帝之則也
[주-C001] 사(辭) :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주-D001] 자송(自訟) :
자책(自責)과 같은 뜻으로 지금 말로 자기 고발의 뜻. “제 허물을 능히 보고 안으로 스스로 송사하는 자를 내가 보지 못하였노라.” 《論語》
[주-D002] 정다운 …… 아득하네 :
멀리 갈려진 친우를 그리워하는 말이다. 두보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시에, “위북(渭北)엔 봄철나무, 강동(江東)엔 저녁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 하였다.
[주-D003] 승묵(繩墨) :
대목이 나무를 바로잡는 먹줄인데, 사람의 행동하는 바를 준칙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4] 속여 사는 건 :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사람의 삶은 정직한데, 속여 사는 것은 요행히 면할 뿐이다.” 하였다.
[주-D005] 이것저것 …… 순종하려네 :
나도 몰래 하늘 법을 순종함[不識不知 順帝之則]. 하늘이 분부한 양심대로 행하면 스스로 하늘[帝]의 법칙에 맞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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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애 추석사(哀 秋夕辭)
이숭인(李崇仁)
가을 저녁이 처참하여 / 哀秋夕之慘悽兮
풍우가 몰아쳐 캄캄하네 / 風雨颯其晦冥
깊은 시름을 품고 잠깐 조느라니 / 懷沈憂以假寐兮
내 혼이 둥둥 위로 올라갔네 / 魂聇聇其上征
허공을 가리키며 황홀하여 / 指虛無以恍忽兮
구불구불 길이 있는 듯 하였네 / 若有路乎紆縈
문득 저 하늘에 오르니 / 忽焉升彼蒼兮
옥황님 계신 대궐 엄연했네 / 儼玉皇之高居
네 문을 활짝 열고 오라는데 / 門四闢以招徠兮
그 누가 뒷걸음치며 주저하랴 / 孰云却步而趑趄
내가 들어가 꿇어앉아 말씀아뢰니 / 入余跪而陳辭兮
옥황님 낯빛이 부드럽네 / 皇爲之色敷腴
내가 여쭈오되, “하토의 미신이 / 曰下土之微臣兮
맺힌 마음 펼 길이 없사오이다 / 心菀結猶未得信
전에 제가 강보를 겨우 면해서부터 / 曩余僅免襁褓兮
반드시 옛 사람을 스승삼아 몸이 죽는 한이 있어도 인을 이루라는 / 動必師乎古之人殺身以成仁
중니의 수훈과 / 惟仲尼之垂訓兮
지사는 시궁창에 죽을 것을 잊지 말라는 / 志士不忘在溝壑兮
그(공자)의 말씀, 맹자가 되새겼기에 / 子輿味夫斯言
차라리 힘 부조하여 중도에서 죽을지언정 / 寧力不足而或斃兮
정성스레 마음으로 지켜왔소 / 羌佩服以拳拳
충군과 애국에 뜻으로 오로지 / 忠君與愛國兮
딴 생각이 없었사온데 / 志專專其靡佗
어쩌다 시속 인심이 저리도 험하여서 / 何時俗之險巇兮
곡학과 사심으로 / 學曲而心阿
저를 보기 도마 위의 고기같이 / 視余猶机上臠兮
침 삼키고 이를 가나이까 / 旣鼓吻又磨牙
저 아첨ㆍ중상배 들의 우쭐댐은 / 彼讒諛之得志兮
예로부터 남의 나라를 망치는 것 / 自昔匈人國也
만 번 죽은들 제 무슨 후회있으련마는 / 雖萬死余無悔兮
이 뜻이 안 나타남이 두렵사와 / 恐此志之不白也
가끔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오니 / 時陟高以瞰遠兮
이 길 버리고 어디를 가오리이까 / 余舍此而安適
어질디 어지신 옥황님 덕으로 / 惟皇德之孔仁兮
저를 이 육침(陸沈 물없이 육지가 그대로 침몰된 것)에서 건져 주옵소서 / 拯余乎陸之沈
눈물이 비처럼 섞여 내리고 / 涕洟交以雨滂兮
가슴이 메어 조아리니 / 謇心噎而欽欽
옥황님이 나의 충곡을 어여삐 여기사 / 皇愍余之深衷兮
오너라, 너 내 말을 듣거라 / 徠爾聽我辭
학문의 도 귀한 것은 / 所貴學之道兮
변통하고 추이한 줄 아는 것 / 能變通而推移
해가 중천에 왔다간 기울게 마련 / 日中則昃兮
달도 차면 이지러지나니 / 月盈而虧
천도도 오래 일정하지 않거니 / 天道亦不可久常兮
인사 어찌 안 그러하리 / 在人事其何疑
세상이 모남을 미워하는데 / 世旣惡夫方兮
네 어찌 궁글게 하지 못하며 / 爾何惜乎爲圓
세상이 백을 숭상하는데 / 世旣尙夫白兮
네 어이 홀로 현을 지키는가 / 爾胡獨守此玄
너의 조난을 불쌍히 여긴다며는 / 我哀爾之遭罹兮
그것은 또한 너의 탓 / 亦惟爾之故也
위험을 떠나 편안하려면 / 欲去危以就安兮
네 길을 돌림이 어떠할꼬 / 盍反爾之道也
내가 묵묵히 물러나 곰곰 생각하니 / 余默退而靜思兮
옥황님의 은혜가 망극하되 / 皇恩之罔極也
나의 첫 마음은 고칠 수 없는 것 / 竊不敢改余之初服兮
일생을 곤궁에 마치리라 / 固長終乎窮阨
나보다 천 년 전 앞서 난 분과 / 前余生之千古兮
뒤에 올 사람들 무궁하네 / 其在後者無窮
내 뜻은 맹세코 못 돌리리니 / 矢余志之不廻兮
옛날 사람 우러르며 몸 닦으리 / 仰前脩而飭躬
온 세상 뭇 사람들 나를 모르니 / 世貿貿莫我知兮
이 글을 지어 스스로 위로하네 / 庶憑辭以自通
[주-C001] 사(辭) :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주-D001] 몸이 …… 이루라 :
공자가 말하기를,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생을 구하기 위하여 인(仁)을 해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룸이 있다[志士仁人 無求生而害仁 有殺身以成仁]” 하였다. 《논어》
[주-D002] 지사(志士)는 …… 잊지 말라 :
지사는 구렁에 있음을 잊지 않음[志士不忘在溝壑]. 이것도 공자의 말인데, 맹자가 인용하였다. 언제나 몸이 곤궁하다가 죽어서 구렁에 던져질 것을 각오하고 지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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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절동(浙東) 겹사안(郟士安)에게[思美人辭]
정몽주(鄭夢周)
옥 같은 임을 생각하니 / 思美人兮如玊
푸른 바다 사이에 두고 밝은 달 함께 했네 / 隔蒼海兮共明月
망망한 구주(九州 중국)를 바라보니 / 顧茫茫兮九州
늑대가 길을 막고 용이 들에서 싸우네 / 豺狼當道兮龍野戰
내 말을 부상에 매었노니 / 紲余馬兮扶桑
어느때 함께 잔치에 놀리 / 悵何時兮與遊讌
그대는 예로 나아가며 의로 물러서고 / 進以憹兮退以義
신과 홀에 화잠을 꽂았네 / 搢紳笏兮戴華簮
한 번 만나 내 뜻을 말하고 싶은데 / 願一見兮道余意
그대는 어이 강남에 멀리 / 君何爲兮江之南
[주-C001] 사(辭) :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주-D001] 사미인(思美人) :
그리운 사람의 뜻. 한문학의 미인은 군주(君主)의 뜻 외에 일반적으로 현인(賢人), 군자(君子), 애인 등을 통칭하는데, 우리말의 임에 해당한다.
[주-D002] 용이 들에서 싸우네 :
용이 들에서 싸움[龍野戰]. 《주역》에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도다[龍戰于野 其血玄黃].” 하였는데, 여기서는 군웅(群雄)이 일어나 천하를 쟁탈(爭奪)한다는 뜻이다.
[주-D003] 신(紳)과 홀(笏) :
신(紳)은 큰 띠. 사대부(士大夫)의 상징이고, 홀은 옛날에 왕과 고관(高官)이 손에 쥐던 작은 판[천자는 옥으로, 제후(諸侯)는 상아(象牙)로, 대부는 대[竹]로 만들었음]. 할 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홀(笏)에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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