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계종 사찰에 이건희 위패 모신 삼성家
서울 조계종 사찰에 이건희 위패 모신 삼성家..
주말 새벽 총출동구교형·이혜리 기자 입력 2020.11.15. 13:10 댓글 1개
[경향신문]
지난 1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외곽에 위치한 불교 종단 조계종 소속 사찰 A사. 동이 트자 사찰 직원들이 길목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법당 안의 집기를 이리저리 옮기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 사찰 곳곳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주변을 살피면서 요인을 기다리는듯 삼엄한 경계를 시작했다. 오전 8시15분 검은색 고급 세단이 A사 앞에 들어섰다. 흰색 상복을 입은 여성이 차에서 내리자 미리 배웅 나와 있던 스님과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 여성은 자연스럽게 경내로 들어가 대웅전에서 절을 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여성이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경내로 걸어갔다. 그 역시 흰색 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당일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지 21일째로 가족끼리 모여 49재를 지내는 날이었다. 49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로부터 49일 동안 7차례에 걸쳐 재를 지내며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이다. 보통 장례식장에서 상중인 여성들은 검은색 상복을 입지만 고인의 영결식에서 부인 홍라희 여사와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모두 흰색 상복을 입어 이목을 끌었다. 불교에서 상례에 빛을 상징하는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죽음이란 어두운 세계로 간 사람에게 보다 밝은 기운을 전달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삼성가 가족들의 입장을 지켜보는 사이 대웅전에서 20m가량 떨어져 있던 기자에게 사찰의 한 직원이 다가왔다. “30분 정도 (경내를) 비워줘야 한다. 참배는 1시간 정도 후에 가능할 것 같다”며 절 바깥으로 나가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이 무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보이는 남성도 도착했다. 주변에서 “오셨다!”는 말이 들렸다. 이에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슨 행사를 하느냐’고 묻자 해당 직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기도회를 한다”고 얼버무렸다. 주변에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이구동성으로 앵무새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추가로 들어온 차량 2대에서 흰색 상복을 입은 여성들과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성들이 내렸다. 이후 사찰에서 200m가량 떨어진 주차장에 삼성가 가족들이 타고 온 세단과 경호원들이 탑승했던 밴 여러 대가 시동을 켠 상태로 49재가 끝날 때까지 1시간가량 대기했다. 운전기사 등은 평소에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이따금 차에서 내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49재 전날인 13일 A사를 방문했을 때는 염라대왕을 모신 명부전에서 고인이 위패도 볼 수 있었다. 법당 안쪽에 위패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탁상 위에 놓인 하얀색 종이 위패에 검은색 글씨로 ‘新圓寂 亡父 경주후인 이건희 靈駕’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서 新圓寂 亡父(신원적 망부)는 갓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한다. 경주는 고인의 본관, 후인은 돌아가신 분이 남자일 때 붙이는 말이다. 靈駕(영가)는 영혼의 다른 말로 이생에서 삶을 마치고 다음생의 생명을 받기 이전까지의 상태를 일컫는다.
불교에서 49일 동안 매 7일마다 한 번씩 재를 올리는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안에 자신의 업을 심판 받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육신 없이 혼령만 떠도는데 유가족이 그 기간에 공덕을 지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위패 옆에는 장인·장모(고 홍진기 전 내무부 장관·김윤남 여사)와 형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 등 돌아가신 친족들의 위패도 함께 봉안돼 있었다. 먼저 유명을 달리한 친족들의 위패를 함께 둔 것은 고인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위로하는 한편 모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차원인 것으로 해석된다.
외부에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온 고인의 49재에는 부인과 자녀, 사위, 손주까지 직계가족 11명만 참석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별세한 고인의 49재는 12월12일까지 매주 토요일 A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49재 비용은 얼마나 될까. 문의 결과 매 7일마다 제사를 지내면 500만원, 49일째 되는 날 한 번만 제사를 지내면 250만원이 든다고 한다. 위패를 30년간 사찰에 모시기 위해서는 추가로 300만원이 소요된다. 불교계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홍라희 여사는 오래 전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어왔다”면서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에 이재용 부회장의 법명으로 등도 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 외곽에 있는 한 조계종 사찰의 명부전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위패가 봉안돼 있다. ‘신원적 망부’(新圓寂 亡父)라는 글귀는 ‘최근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모신 위패라는 뜻이다. 옆에는 이 회장의 장인·장모(고 홍진기 전 내무부 장관·김윤남 여사)와 형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 등 친족들의 위패도 함께 봉안됐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구교형·이혜리 기자 wassup0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