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 17670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嗒然忽忘吾 / 탑연홀망오  무심히 문득 나를 내려놓으니妄吾事更無 / 망오사갱무  나를 미혹하는 일 더 이상 없네荷叢露已滑 / 하총로이활  연밭에 이슬 미끄러져 내리더니蘭葉秋先枯 / 난엽추선고  난초 잎은 가을에 먼저 시드네繞壁蟲聲亂 / 요벽충성란  풀벌레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데含山月影孤 / 함산월영고  산을 머금은 달그림자 외롭네白鷗舊時約 / 백구구시약  흰 갈매기와 옛 약속 지키러仍復在江湖 / 잉부재강호  다시금 강호에 돌아와 앉았노라萬斛胷中事 / 만곡흉중사  마음속 천근만근 근심도淸宵一點無 / 청소일점무  맑은 밤엔 한 점 남아 있지 않네正能疏濯淖 / 정능소탁뇨  바로 세속의 때 씻어낼 수 있으니豈欲辨榮枯 / 기욕변영고  영고성쇠를 어찌 따지고 싶으랴鶴睡堦還凈 / 학수계환정  학이 ..

전가사 12수 〔田家詞 十二首〕

허백당시집 제1권 / 시(詩) / 성현(成俔)전가사 12수 〔田家詞 十二首〕 봄기운이 고삐 풀려 온 하늘을 비상하니 / 靑陽縱靶翔寥廓못물은 넘실넘실 얼음은 바삭바삭하여라 / 塘水溶溶氷拍拍다순 바람은 버들 불어 가지마다 노란데 / 和風吹柳萬條黃채장으로 소를 몰아 농사일을 시작하네 / 彩杖驅牛啓見作다순 햇살은 붉은 여뀌 싹을 좋이 길러 주고 / 溫陽滋養紅蓼芽눈 온 뒤 냉이잎은 갠 언덕에 파릇파릇하네 / 雪後薺葉敷晴坡사방 이웃은 술 갖추고 대보름 밤에 모여 / 四隣杯盤聚元夕동산에 뜨는 달을 보러 서로 왕래하는데 / 東山見月相經過보름달은 무심히 스스로 와서 비추는지라 / 輪魄無心自來照노인들은 해마다 풍년 조짐을 점치는구려 / 老叟年年占豐兆이상은 1월을 읊은 것이다. 목숙은 땅 뚫고 나오고 물쑥은 짤막해라 / 苜..

글,문학/漢詩 2024.09.06

가을의 회포를 서술한 시 2수

택당선생집 제1권 / 시(詩)  / 이식(李植)가을의 회포를 서술한 시 2수 고니 그려 보려 해도 고니와는 영 다르고 / 刻鵠不類鵠호랑이 그림 역시 호랑이완 딴판일세 / 畫虎不成虎문장 솜씨 보이려고 시간 허비했을 뿐 / 文辭費工巧학문의 세계는 끝내 황폐해졌어라 / 經術終鹵莽세속의 흐름에 그럭저럭 휩쓸린 몸 / 由由俗同流세상에선 녹록하다 끼워 주지도 않는구나 / 碌碌世不數어느새 세월은 한 해의 내리막길 / 歲月坐晼晚풍상 속에 모습 변한 풀과 나무들 / 風霜變草樹사무치게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 / 人情感氣序갖가지 느낌으로 심장 속에 파고 드네 / 百端侵腸肚그래도 나의 지취(知趣) 평소에 정해 두고 / 平生定微尙법도 어긋나지 않게 묵수(墨守)했나니 / 守墨不偭矩이것을 가지고 어디로 돌아갈까 / 持此欲何歸낙천 그..

글,문학/漢詩 2024.09.04

사락정 시를 지어서 보내다 아울러 서문을 쓴다.

퇴계선생속집 제1권 / 시(詩) / 이황(李滉)사락정 시를 지어서 보내다 아울러 서문을 쓴다. 안음현(安陰縣)에 마을이 있으니, 그 이름을 영송(迎送)이라 한다. 산과 물은 맑고 고우며, 토지는 살지고 넉넉하다. 여기는 전씨(全氏)가 옛날부터 대대로 살던 곳인데, 시냇가에 정자를 지었는데 자못 그윽하다. 장인 권공(權公)이 귀양살이에서 돌아오자, 온 집안을 이끌고 남으로 가서 이 마을에 우거(寓居)하였다. 이 정자를 발견하고는 매우 기뻐하여 새벽에 가서는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기를 잊곤 하였다. 그러다가 서울에 있는 내게 글을 보내어, 정자 이름과 함께 그에 따른 시를 청하였다. 나는 그곳의 훌륭한 경치를 익히 들은 터라 한번 가 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지 10년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촌에서 ..

글,문학/漢詩 2024.09.04

매화 절구 열여섯 수 〔梅韻 十六絶〕

존재집 제1권 / 시(詩) / 위백규(魏伯珪)매화 절구 열여섯 수 〔梅韻 十六絶〕 뜰을 걸을 때도 고매 주위를 맴돌고 / 步庭繞古梅방에 들어와서도 고매 바라보자니 / 入室望古梅이웃 사람들이 찾아와서 묻기를 / 傍人來相問무슨 일로 문을 항상 열어 두는지요 / 何事戶常開매실(梅室) 늘 봐도 만족스럽지 않아 / 尋常看不足은근히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지요 / 慇懃且憑欄때때로 혼자 웃으니 / 時時獨自笑이 마음 뉘와 함께 얘기할까 / 此意與誰論매함(梅檻) 처마 높아 시원한 바람 절로 화창하고 / 搴開風自暢짧은 처마에 달빛 머뭇거리지 않네 / 短齊月不遲바람 들고 달 비추기에 좋지만 / 宜風復宜月유달리 고매에게 어울린다오 / 偏與古梅宜매첨(梅簷) 조용히 앉아 작은 창 열어 보면 / 靜坐開小牖홀로 매화만이 내 마음 알아주..

글,문학/漢詩 2024.08.31

비해당(匪懈堂) 사십팔영(四十八詠)

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1권 / 시(詩) 박팽년(朴彭年) 등비해당(匪懈堂) 사십팔영(四十八詠) 병인(幷引) 예전 사람들이 지은 시는 말은 유창해도 뜻을 말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물을 읊는 자들이 공력을 전적으로 쏟지만 정밀한 데에 나아가기 어려운 것은, 시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많으나 유능한 자가 적기 때문이다.삼가 생각건대, 비해당(匪懈堂)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를 염두에 두고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탐구하여, 호강에 익숙해져 있으면서 도덕과 기예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지체 낮은 선비들을 허여하였으나 문장(文章)은 분촌(分寸)까지 따지곤 하였다. 지금 이 사십팔영의 작품은 어찌 조선 200년 동안 없었을 뿐이겠는가. 이미 성정(性情)의 간사함이 없는 데에 근본을 두었으..

글,문학/漢詩 2024.08.30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율곡선생전서 제2권 / 시(詩) / 이이(李珥)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고산의 아홉 굽이 계곡 / 高山九曲潭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 世人未曾知내가 와 터를 닦고 집을 짓고 사니 / 誅茅來卜居벗들이 모두 모여드네 / 朋友皆會之무이산을 여기서 상상하고 / 武夷仍想像소원은 주자를 배우는 것일세 / 所願學朱子 일곡은 어디인가 / 一曲何處是관암에 해가 비쳤도다 / 冠巖日色照펀펀한 들판에 안개 걷힌 뒤에 / 平蕪煙斂後먼 산이 참으로 그림 같구나 / 遠山眞如畫소나무 사이에 술 항아리 놓고 / 松閒置綠樽벗 오기를 우두커니 기다리네 / 延佇友人來 이곡은 어디인가 / 二曲何處是화암에 봄 경치 늦었구나 / 花巖春景晩푸른 물결에 산꽃을 띄워 / 碧波泛山花들판 밖으로 흘려 보내노라 / 野外流出去이 경치 좋은 곳을 사람들이 모르..

글,문학/漢詩 2024.08.29

청담〔淸潭〕

월곡집 제4권 / 시(詩) / 오원(吳瑗)청담〔淸潭〕 깊숙이 찾아 나뭇길을 발견하니 / 幽尋得樵徑단풍나무 숲에 외딴 마을 숨어 있네 / 紅樹隱孤村못 그림자엔 높은 구름 머물렀고 / 潭影高雲住바위 바람엔 멀리 들리는 소리 번다하네 / 巖風遠籟繁높은 산봉우린 연좌에 참여하고 / 危峰參宴坐흐르는 물은 망언에 관여하네 / 流水與忘言귀로에 청려장 짚고 한참 가다보니 / 歸路扶藜久맑은 햇빛 속으로 석문이 보이네 / 淸暉見石門 [주-D001] 청담(淸潭) : 북한산성 내의 지명이다. 《만기요람(萬機要覽)》 〈총융청(摠戎廳) 북한산성〉의 기록에 의하면, “산성 부근의 토지는 구역을 나누어 확정한다.”의 주에, “신둔(新屯)ㆍ청담(淸潭)ㆍ서문하(西門下)ㆍ교현하(橋峴下)는 훈련도감창의 구역이며, 미아리(彌阿里)ㆍ청수동(靑..

글,문학/漢詩 2024.08.29

새들을 읊다 21수

옥담시집  / 이응희(李應禧)새들을 읊다 21수 ○산새를 읊고는 이어 다른 새들도 읊어서 뜻을 넓혀 보고자 생각했다 [詠群鳥 二十一首 旣詠山鳥因思群鳥以廣之] 봉황(鳳凰)새가 있어 높은 뫼에서 우니 / 有鳥鳴高岡그 소리가 마치 생황이 울리는 듯 / 其聲若笙簧문왕이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 文王今已歿조양에서 우는 소리 다시는 듣지 못하네 / 不復聽朝陽 난조(鸞鳥)거울에 비친 제 그림자 보고 울고 / 對鏡啼孤影시냇물에 비친 고운 모습 애석해 하네 / 臨川惜麗容미인은 원래 박명한 경우가 많은 법 / 紅顔多薄命아 너의 신세가 그와 같구나 / 嗟爾即相同 공작(孔雀)다른 새는 모두 성씨가 없건만 / 百鳥皆無姓오직 너만은 제 성씨를 가졌구나 / 惟君得姓全대성인의 후예인 줄 알겠으니 / 知爲大聖後어찌 두려워 공경..

글,문학/漢詩 2024.08.27

어느 며느리의 감동글

어느 며느리의 감동글 요즘 이런 며느리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결혼한 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 집에 오신 것은 결혼 초 한 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 어머니는 아들 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 일을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일만 하시던 시 어머니는 아들 둘 다 대학 졸업 시키신 후에 일을 줄이셨다고 한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셨었다. "고생도 안 해 본 서울 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가진 거 없는 우리 아이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 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 아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