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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174517’… ‘이것이 인간인가’

淸潭 2007. 1. 13. 12:27

내 이름은 ‘174517’… ‘이것이 인간인가’

 

‘따스한 집에서/안락한 삶을 누리는 당신,/집으로 돌아오면/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얼굴을 만나는 당신,/생각해 보라 이것이 인간인지./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평화를 알지 못하고/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예, 아니요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프리모 레비의 시 ‘이것이 인간인지’에서)

1941년 이탈리아 토리노대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면서 받은 졸업증서에는 ‘유대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아무리 수재라도 유대인은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장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프리모 레비(1919∼1987)는 그 대신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43년 12월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오른쪽 사진)로 이송된다.

 

국내외 지성들의 저서에서 너무도 많이 소개된 레비. 그는 화학자이지만 대단히 문학적인 에세이와 회고록 등을 남겨 움베르토 에코와 함께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그 레비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가 이제야 번역됐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담아 쓴 회고록 ‘주기율표’도 함께 나왔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평균수명 3개월’이라는 아우슈비츠에서 10개월을 살아낸 레비의 기록이다. 유명한 시 ‘이것이 인간인지’로 시작되는 이 기록은 읽기가 쉽지 않다. 글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자신은 소리치지 않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글쓰기 때문이다. 지독한 공포를 억누르면서 유머와 위트를 섞어 표현하는 문장들이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날카로운 고통을 준다.

 

수용소로 떠나던 그날은 ‘새벽이 배신자처럼 덮쳤고, 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칼에 베인 것 같은 아픔을 주던 때’였다. 아름다운 문장에 막연하게 슬퍼해선 안 된다. 이어 레비가 고발하는 수용소의 삶은, 수많은 끔찍한 전쟁 사진과 영화보다 생생하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아우슈비츠 정문에 새겨진 구절은 단테 ‘신곡’의 지옥문 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레비의 기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곡’의 구절들은 ‘지옥편’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수용소는 지옥이었다.

 

레비의 이름은 174517. 빵과 죽을 받을 때 배급이 늦어지지 않도록 팔뚝의 숫자 문신을 재빨리 보여줘야 한다. 익숙해질 때까지 수차례 따귀를 맞고 발길질을 당해야 했다. 먼저 온 수인한테 거둬간 칫솔은 돌려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가 “지금 집에 있는 게 아닙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갇혀 있는 내내 그 말을 들었다. “여긴 요양원이 아니야, 여기서 나가는 길은 굴뚝으로 가는 것뿐이야.” 목이 말라 고드름을 따먹으려 했지만 간수가 빼앗아버렸다. “왜 그러십니까”라는 물음에 간수는 “이곳엔 이유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한다. 수용소란 ‘왜?’라는 질문을 포함한 모든 것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 사실을 빨리 이해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레비에게 끔찍한 것은 인간성이 버려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워 나간다.” 주인 없는 숟가락이나 단추를 발견하면 주머니에 넣고 완전히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 옆 사람 빵은 너무 커 보이고 자기 손에 들린 것은 눈물 날 만큼 작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바꿔 보기도 하지만 같은 착각이 다시 일어난다. 그런 삶이 매일 반복되는 곳이 수용소였다.

 

레비의 증언은 단순한 체험수기가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폭력적인 현대 역사를 가슴에 새겨 두길 바랐으며, 그래서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는 인간 내부의 집단적 광기를 온몸으로 체험했으며 그것이 악한 본능임을 알고 있었다. “불관용 압제 예속성 등을 내포한 새로운 파시즘이 이 나라 밖에서 탄생해 살금살금 들어오거나 내부에서 서서히 자라날 수 있다. 그럴 경우 지혜로운 충고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기억이 저항할 힘이 되고 교훈이 될 것이다.”

 

인간성을 붙들기 위해서는 이성에 대한 단련과 역사에 대한 반성이 거듭돼야 한다고 믿었던 레비. 수용소 체험을 증언함으로써 파괴된 ‘인간’의 척도를 재건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고 믿었지만, 무관심한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옥 같은 고통보다 두려운 것은 인간의 망각이라는 사실을 레비의 죽음은 증명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이 있었음을 생각하라./당신에게 이 말들을 전하니/가슴에 새겨 두라./집에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잠자리에 들 때나, 깨어날 때나. 당신의 아이들에게 거듭 들려주라.’(‘이것이 인간인지’에서).

원제 ‘Se questo `e un uomo’(1958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