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하안거 끝내고 만행 오른 스님들
<한국일보 2006/8/9/수/종합1,문화23면>
열반에 닿아야 수행의 끝이니…
스님들의 여름 집중 수행인 하안거(夏安居)가 8일(음력 7월 15일) 끝났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 석 달 동안 절 문을 나서지 않은 채 참선과 수행에만 정진하는 행사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 따르면 음력 4월 15일부터 시작한 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94개 선원에서 2,219명의 스님이 참여했다.
이날 오전 9시, 충남 예산 덕숭총림의 수덕사 대웅전에서 열린 하안거 해제(解制) 법회에는 산내 암자인 보덕사, 능인선원, 견성암에서 하안거를 한 스님과 신도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80) 스님은 수좌인 설정(雪靖) 스님(사진)이 대신 읽은 법문에서 “해제했다고 방심하지 말라. 해제란 생사를 영원히 끊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발심해서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회를 마친 스님들은 저마다 걸망을 메고 만행길에 올랐다. 그 일행 가운데 베스트셀러 ‘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현각스님이 눈에 띄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 동안 하루 다섯 번씩 108배를 했다는 그는 공부 많이 하셨냐는 질문에 ‘쬐금’이라고 쑥스러워하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공부가 엉터리였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능인선원은 덕숭총림을 대표하는 비구 선원이다.
이번 하안거를 이끈 설정스님은 전날 저녁 기자들을 만나 하안거 풍경과 수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님은 “덕숭총림은 구한말 경허스님이 다 끊어져가던 선풍을 일으키고, 만공, 혜월 등 큰 스님들이 그 뒤를 이어 선을 중흥시킨 곳”이라며 “전국 사찰의 조실, 방장 스님 치고 이곳 능인선원을 안 거친 이가 없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고 소개했다.
“규율이 매우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것이 덕숭총림의 특징입니다. 여기 오는 스님들은 10~30년씩 화두를 들고 수행해온 분들이라 죽비를 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채소 기르고 풀 베는 등 노동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 전통이지요.
안거 중 스님들 모습은 살얼음판 같아요. 크게 웃고 떠드는 것은 금지돼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죽을 일이 아니면 절대 밖에 못 나가고, 말을 많이 해선 안 되고, 음식은 아무 때나 못 먹고…. 석 달 간 신문, 잡지, 라디오, TV, 휴대폰도 금합니다. 이번 능인선원 하안거에는 스물 다섯 분이 참여했는데, 딱 한 분, 세르비아 출신 외국인 스님이 장이 녹아내리는 큰 탈이 나서 중도에 빠지셨습니다. 참선하고 앉은 방석에 피가 흥건히 고이도록 고통을 말하지 않고 견디다가 결국 수술을 받으셨지요.”
왜 이토록 치열하게 수행하는 것일까. 스님은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며 “안거는 세상을 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할 지혜를 얻기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수행과 선의 본질을 일러주는 ‘철수개화’(鐵樹開花)와 ‘화중생련’(火中生蓮)이란 말을 숙제처럼 던졌다. “쇠나무에 꽃이 피고 불 가운데 연꽃이 피는 도리가 불법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까. 하안거를 마치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질문이 일어났다. 수행은 스님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므로.
예산=오미환 기자 mhoh@hk.co.kr
[르포] 하안거 해제일 수덕사 능인선원 풍경
<경향신문 2006/8/9/수/종합1,문화18면>
하안거 해제일인 8일, 90일간의 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산문을 나서기에 앞서 설정스님(왼쪽)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있다. |
둥그런 여름달이 서해바다를 비추는 8일 새벽 2시, 덕숭산 꼭대기의 정혜사 능인선원은 깨어난다.
산 아래 수덕사에선 서늘한 산기운을 따라 목탁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잠에 든 우주만물을 깨우며, 도량을 정화하는 도량석(道場釋)이다. 나지막이 시작된 목탁소리는 한껏 높아졌다가 서서히 덕숭산 어둠속으로 잦아든다.
능인선원 선방 스님들의 하루가 열렸다. 잠길에서마저 화두를 꼭 들었을 스님들이다. 이날은 하안거(夏安居)를 마무리짓는 해제일. 스님들은 지난 3개월 동안 선방에 들어앉아 화두만을 참구(參究)했다. 능인선원의 선풍(禪風)에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능인선원이 어떤 곳인가. 시퍼렇게 날선 선풍을 자랑하는 덕숭총림의 대표선원이다. 꺼져가던 한국 근세의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선사와 수월 혜월 만공 고봉 금오 혜암 벽초 설봉 등으로 이어지는 선(禪)의 터전.
만공스님이 ‘금선대’라는 띠집을 지으며 시작된 덕숭총림 선원의 역사는 100여년에 이른다. 능인선원이 첫손에 꼽히는 비구선방이라면, 견성암선원은 최고의 비구니 선방.
비구니 법맥을 이어낸 법희스님, 개화기 신여성운동가로 불문에 귀의한 일엽스님 등의 선지식을 배출하기도 했다.
‘禪之宗刹(선지종찰)’ ‘東方第一禪院(동방제일선원)’이란 편액에 걸맞게 능인선원의 하안거는 철저했다.
보통 새벽 3시 도량석과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만 능인선원은 2시에 불을 밝혔다. 공양시간, 보행 등 잠깐의 시간 외에는 밤 10시까지 수행정진이 진행됐다.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스님은 “능인선원의 특징을 들라면 꼭 2가지를 꼽는다”며 “하나는 딴 곳보다 1시간 일찍 시작하고 1시간 늦게 하루를 맺는다는 점,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울력을 많이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을 중요시하는 것은 덕숭문중 수행가풍의 한 특징으로 2대 방장을 지낸 벽초스님의 ‘선농일여(禪農一如)’에서 굳어졌다.
이날 오전 7시 소나무 숲을 병풍 삼은 능인선원의 문이 석달 만에 열렸다. 걸망을 멘 스님들이 마당 가운데의 아름드리 보리수 밑을 지나 산길을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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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한 베스트셀러 저자 현각스님은 “공부는 잘 하셨느냐”는 물음에 “매미소리를 잘 들었다”며 미소지었다. 또다른 스님은 그저 빙그레 희미한 웃음만 슬쩍 보인다.
9시가 되자 수덕사 대웅전에는 덕숭총림 선원들에서 수행해온 200여명의 스님들이 모두 모였고, 해제법회가 열렸다. 원담 방장스님은 해제법어를 통해 “해제란 생사영단(生死永斷)을 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황벽 선사는 ‘한 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를 찌를 매화향기 어찌 얻으랴’ 했느니라”며 “방심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이날 조계종 산하 전국 94개 선원에서 모두 2,319명의 스님들이 일제히 해제법회를 갖고 산문을 나섰다. 이제 세상 온 천지를 선방으로 삼은 것. 모든 것을 버려 모든 것을 얻는 마음밭을 차근차근 갈아가는 만행의 새 시작이다.
〈수덕사|글 도재기·사진 이상훈기자 jaekee@kyunghyang.com〉
설정 수좌스님 “참선은 종교 초월한 깨달음의 길”
“鐵樹開花(철수개화), 火中生蓮(화중생연). 쇠 나무에서 꽃이 피고, 불 속에서 연이 자라난다. 이런 도리가 바로 선(禪)이자, 불법(佛法)의 요체다.”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首座)스님(64)은 “철저한 공부가 중요하다”며 선 수행의 도리를 이렇게 정리했다.
스님들의 여름 수행정진인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하루 앞둔 7일 저녁, 충남 예산의 대한불교 조계종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황하루에서 설정 수좌스님을 만났다.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의 대표선원인 능인선원(能仁禪院)의 하안거 이야기 등을 듣기 위해서다.
“수행자라면 방일(放逸)을 물리쳐야 한다. 육체가 방일하면 오욕에 빠진다. 쉽고 편하게 사는 데로 마음이 기운다. 편하고 쉽게 사는 것은 공부보다는 돈, 명예 등에 매달리게 만든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스스로 선택해 충실할 때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바른 수행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스님의 말은 곧 충실한 삶보다는 그저 쉽고 편한 생활만을 좇는 속세인을 꾸짖는 듯하다.
하안거를 끝내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에 대한 당부, 한국 불교의 현실 등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하안거가 해제됐다고 수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접어선 안 된다. 수도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만행함으로써 힘들게 사는 세상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보고 듣고 느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스님은 “한국 불교도 해이해졌다”고 평가한다. 백장선사의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근기가 약해졌다는 것. 스님은 “사회의 발전에 따라 사찰의 의식주도 많이 편리해졌다”며 “옛 스님들의 말처럼 ‘춥고 배고파야 공부가 된다’는 것은 지금도 철칙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북문제 등 이 땅의 살림살이에 대한 지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땅의 비극이 새삼 떠오르며,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절대로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열강들은 통일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성해 우리 스스로 자주통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한다. 원한의 마음이 아니라 동포애를 발휘하고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전쟁을 막고 남북통일을 빨리 이뤄야 한다.”
최근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허허로움으로 선을 찾는 일반인들이 늘면서 곳곳에 ‘선방’이 생겨났다. 설정 스님은 “참선은 승속(僧俗),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의 정신적 건실함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더 대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은 처음부터 잘 지도받아야 한다”며 “선을 잘못 가르치는 곳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한다. 스님은 “간화선이든, 위파사나든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해 깨달음을 얻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수덕사|글 도재기·사진 이상훈기자〉
-설정스님은 누구-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스님은 불교계에선 드물게 이판(수행정진)과 사판(행정 및 포교)을 두루 경험했다.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수덕사를 자주 찾다 열세살에 출가했다. 현재 덕숭총림의 최고 어른인 원담 방장스님이 은사로 덕숭총림의 법맥을 잇고 있다.
아흔날의 비움, 그리고 또 비움의 만행
<한겨레 2006/8/9/수/종교수행28면>
산하대지가 서해안까지 확 트여 보이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 8일 오전 하안거(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참선 정진)를 난 ‘운수납자’들이 말 그대로 납색 옷을 입고 구름처럼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날 조계종 산하 94개 비구·비구니 선방에서 2319명의 선승들이 일제히 결제를 마치고 선방을 나서 만행을 떠났다.
결제를 난 선승들은 수좌(首座·선원을 이끄는 선승) 설정 스님의 지도로 매일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짜여진 시간에 맞춰 참선해왔다. 이들은 지난 석 달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은 채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 잡지, 책을 보지 않았다. 세상과 통로를 단절한 채 오직 내면만을 마주한 것이다.
떠나는 납자들에게 덕숭총림 방장 원담 스님은 “해제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라. 생사영단(生死永斷·생사를 영원히 끊는 것)을 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라”고 경책한다.
조계종 94개 선방 2319명 여름수행 하안거 해제
법웅 스님 앉아서 장좌불와 “산문 나선 오늘이 다시 시작”
바랑을 메고 정혜사 산문을 나서는 선승들의 발걸음에서 90일 동안의 살림살이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 무게는 무겁지 않다. 밤낮으로 다리를 꼬고 앉았음에도 마치 날다람쥐처럼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무언가를 쌓은 것이 아니라 비운 자만이 가능한 깃털 같은 가벼움이다. 8만4천근의 무게는 오직 화두일심으로 한 근이 되었고, 마침내 이 한 근마저 놓기 위해 백척간두로 나아갔다. 억겁 동안 굴레를 끊기 위한 대결단이 아닐 수 없다.
정혜사 선방에선 숭산 선사의 외국인 제자인 현각 스님과 오광 스님도 함께 했다. 오광 스님은 장이 흘러 내리는데도 이를 감춘 채 정진하다 좌복(방석)에 피가 흥건히 고인 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목숨을 건 정진이다. 그가 병원에 실려가자 선방에선 그의 좌복을 빼버렸다. 그것이 선방의 무서운 법칙이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조차 무시한 채 생사를 끊고자 했던 그는 중도에 선방을 나온 것이 못내 절통해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선방 주위를 돌며 홀로 정진했다.
법웅 스님은 선방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고, 잘 시간이 되면 만공선사가 살던 선방 밑 소림초당에 기거하면서 90일간 한 번도 바닥에 등을 대지 않은 채 잠을 자지 않은 장좌불와를 했다. 그의 눈빛에서 수마를 두 동강 낸 무사의 결기가 번득인다. 스승 숭산 선사가 열반한 뒤 정신적 지주를 잃고 방황하던 현각 스님과 오광 스님에게 “덕숭산이 그대들 은사 스님의 출가본사이니 이곳에서 결제를 나라”고 권유한 사람이 법웅 스님이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전통 선방에서 같이 하기가 쉽지 않던 이들은 “격의 없이 외국인 수행자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줘 고맙다”며 함께 했다. 그는 점심 공양 뒤 논 밭에서 선승들이 함께 울력할 때 호미와 낫 등을 챙기는 고두 소임을 맡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엉터리다. 철저히 참회하고 초심으로 정진할 것이다.”
‘하버드대’라든가, ‘유명인’이라는 짐조차 벗어버린 듯 그들 역시 가볍기 그지 없다.
지난해 열반한 조계종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을 시봉했던 진광 스님도 법장 스님의 갑작스런 열반의 충격을 딛고 90일 간 좌복에 앉았다. 그는 선방을 나서면서 “우리 스님이 좋아했던 히말라야에서 스님의 유품을 태워드리기 위해 티베트로 떠난다”고 했다.
떠남과 만남,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설정 스님은 진짜 수행은 지금부터라며 마지막 죽비를 내리친다.
“화광동진(和光同塵·진리의 빛 그대로 세상과 함께 함)하라.”
예산 덕숭산/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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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나서는 법웅 스님(앞)과 현각 스님(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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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덕숭총림은 만공 선사가 기틀다진 선불교 본가
충남 예산 덕숭산은 조선시대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선을 되살려 근대 선의 첫새벽인 경허 선사의 가풍을 잇는 곳이다. 수덕사의 산내 말사인 정혜사는 덕숭산 정상 부근에 있는데, 경허의 제자인 혜월 선사와 만공 선사가 머물면서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혜월이 51살에 부산 쪽으로 내려간 뒤 만공이 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옛부터 ‘사자의 포효에 백수의 뇌가 파열되며, 사자굴에 다른 짐승은 살 수 없다’고 했다. 만공의 문하엔 새끼 사자들이 몰려들었다. 보월, 금봉, 고봉, 벽초, 혜암, 전강, 금오, 춘성, 원담, 숭산 등 비구 선사와 법희, 일엽, 만성 등 비구니 선사 등 훗날 한국불교의 선을 일으켜세운 기라성 같은 법기들이었다. 따라서 신의 근본도량인 뜻의 선지종찰로 추앙된다. 또 덕숭산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에 있었던 영산회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만공은 선승들을 발심시키는 데 천재적인 기지를 발휘하곤 했다. 당시 내로라 하는 선지식 다섯 명에게 견성을 인가받은 전강선사에게 “네 깨달음은 저 불목하니(절 머슴)보다 못하다”고 단칼에 내리쳐버렸다. 이 말에 분심이 격발된 전강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처절한 정진 끝에 사자후를 토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시인인 김일엽이 처음 절을 방문했다가 밤에 화장실에 다녀와 자기 방을 못 찾아 여러 방문을 두드리자 다음날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 여성이 남자 생각이 나 밤에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고 공개망신을 주었다. 만공은 그런데도 일엽이 전혀 동요하지 않자, 그 자리에서 출가를 허용했다. 일부러 망신을 주어 그릇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덕숭가풍을 잇는 설정 스님은 “이제 좀 더 중생 구제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활발한 선풍이 덕숭산에서 어떻게 세상 속으로 불게 될까.
조연현 기자
8일 夏安居 해제… 덕숭총림 수좌 설정 스님
<한국경제 2006/8/9/수/사람들A35면>
"수영 못하는 자 물에 빠진 이 구할 수 없듯
지혜 열리지 않으면 남 도울 수 없어"
내내 고요하던 절집이 이른 아침부터 술렁댄다.
스스로를 산문(山門)에 가두고 정진하던 스님들이 석 달간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는 날.걸망을 멘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기나긴 장마와 더위로 고생했던 날들,무엇을 얻고 가는 것일까.
활짝 핀 납자(衲子)들의 미소가 장마 끝 햇살 같다.
음력 7월 보름인 8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총림 수덕사 총림선원이 있는 산내 암자 정혜사.이곳 능인선원에서 하안거(夏安居)에 참여했던 25명의 납자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짐을 챙겨 수덕사 법당으로 향했다.
하안거 해제(解制)법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해제법회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은 "결제(結制)에 결제가 없는 것이 옳은 결제요,해제에 해제가 없는 것이 옳은 해제"라며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깨달음을 얻어야 진짜 해제라는 뜻이다.
해제 전날 저녁 서울에서 찾아온 기자들을 만난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스님은 "선(禪)은 마음 속에서 모든 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편인 화두는 일체의 못된 정신을 자르는 칼입니다.
그동안 살면서 든 습관과 분별을 자르는 도구지요.
그러므로 하나의 화두를 잡으면 아주 철저한 마음으로,이번 생에 안 되면 다음 생까지 한다는 각오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방에 발을 들인 납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에 몰입한다.
신문·잡지·텔레비전·휴대전화 등 세상과의 끈은 모두 끊어지고 말도 많이 해선 안된다.
음식은 적게 먹고 일체의 편리함도 거부한다.
"선사들이 가장 경책하는 것이 방일(放逸)함,즉 노는 것입니다.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걷는 것이 수행자의 길인데 주어진 모든 편리를 다 수용하고 살아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정혜사 대중들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예불한 뒤 참선을 시작합니다.
또한 능인선원에서는 일하는 것을 중시해서 채소 등은 자급자족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좌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곳 납자들은 하루에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은 거르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많이 하고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아 안거 동안 보통 4~5㎏,많으면 10㎏씩 체중이 준다고 설정 스님은 전했다.
오랜 장마와 더위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진하는 사람은 날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당장 수해로 고통받는 중생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여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데 자기의 지혜가 열리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지요.
속세의 어려움을 보면서 하루 속히 지혜의 문을 열고 조사관문을 타파하려는 원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덕숭산은 조선 말 불교가 쇠퇴하고 선맥이 끊어질 즈음 경허(鏡虛) 스님이 선풍을 다시 일으켰고 만공·수월·혜월·한암 스님 등 불교 중흥의 주역들이 살았던 곳.지금도 산 전체가 수행도량이어서 능인선원은 물론 비구니선원인 견성암,보덕사 등에서 220여명이 하안거에 동참했다.
설정 스님은 "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승속과 종교를 불문하고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는 최상의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안거 중에 신자들이 와서 세상 걱정하는 것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비축하고 남북이 서로 동포애를 발휘해야 해요.
갈등은 불신(不信)에서 오고,불신은 진실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해요.
모두가 진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
참선공부를 하면 할수록 항상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다는 것.그는 "저 먼 곳의 갈등과 시비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때 세계평화는 이뤄진다"면서 쉼 없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수덕사(예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조계종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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