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平調三首之一)청평조삼수지일 / 李白(이백)
청평조(淸平調)'는 본래 악부(樂府)의 제목이며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이다.
당나라 현종이 침향정(沈香亭) 앞에다 모란을 심고 그 꽃이 만개했을 때,
양귀비와 함께 노닐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정경을 당시의 궁중시인이었던 이태백에게
노래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에 이태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연작 3수를 지었다.
이 三首의 시는 이백에게는 영예와 모욕을 동시에 안겨다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를 시기한
宦官高力士(환관고력사)의 모함에 의해 이백은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고력사는 이 시에서 이백이 양귀비를 천한 출신이자 끝에가서는
평민의 몸으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조비연(趙飛燕;前漢 성제의 황후)에
비유했다고 하여 양귀비로 하여금 이백을 쫓아내게 했던 것이다.
청평조 첫 번째 시
雲想衣裳花想容 운상의상화상용
春風拂檻露華濃 춘풍불함로화농
若非群玉山頭見 야비군옥산두견
會向瑤臺月下逢 회향요대월하봉
구름 같은 저고리와 치마, 꽃 같은 얼굴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고 이슬방울 짙어진다
만약 군옥산(群玉山) 꼭대기에서 보지 못한다면
요대(瑤臺) 달빛 아래에서 만나리라
通釋(통석) 양귀비의 저고리와 치마는 구름같이 아름답고
그 얼굴은 모란처럼 화사한데,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니
모란에 맺힌 이슬방울이 짙어진다.
만약 서왕모가 산다는 군옥산(群玉山) 꼭대기에서 그녀를 보지 못한다면,
선녀가 사는 요대(瑤臺)의 달빛 아래에서 만날 것이다.
{역주1}
淸平調(청평조) : 唐代의 大曲 중의 하나로, 후에 詞牌(사패)로도 쓰였다.
청나라 때 편찬된 《御定詞譜》(卷40)에는
“당나라의 大小曲의 명칭은 《敎坊記》에 보인다.
竹枝, 柳枝, 浪陶沙 등의 곡조는 唐의 小曲이고,
淸平調, 水調, 涼州, 伊州 등의 곡조는 唐의 大曲이다.
[唐之大小曲名 見教坊記 如竹枝柳枝浪陶沙等調 唐之小曲也
淸平調水調涼州伊州諸調 唐之大曲也]”라고 하였다.
淸平調는 唐 玄宗이 양귀비와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면서
李白에게 지어 바치게 한 노래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역주2}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雲想’과 ‘花想’의 ‘想’은 ‘像’과
같은 뜻으로 구름 모양에 양귀비의 치마저고리를 비유하고,
꽃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꽃은 모란을 지칭한다.
{역주3} 檻(함) : 난간 또는 격자가 있는 창문을 지칭한다.
{역주4} 露華(로화) : 이슬방울을 꽃에 비유한 표현이다.
{역주5}
群玉山(군옥산) 신화와 전설에 西王母가 거처한다고 전하는 산의 이름이다.
穆天子傳(목천왕전)에 “신묘년 天子가 북쪽으로 원정을 나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올 때 黑水로 돌아왔다.
계사년에는 群玉(군옥)이라는 산에 도착하였다.
[辛卯 天子北征東還 乃循黑水 癸巳 至于群玉之山]”라고 하였고,
군옥산의 주석에 “곧 《山海經》에 이르기를
‘군옥산은 서왕모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했다.
[卽山海云 群玉山 西王母所居者]” 하였다.
山海經의 주석에 “이 산은 옥돌이 많아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此山多玉石 因以名云]”라고 하였다.
{역주6} 瑤臺(요대) : 옥으로 만든 누대라는 뜻으로,
서왕모를 비롯한 선녀들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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