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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 기생 무운(巫雲)의 수절(江界妓爲李倅守節)

淸潭 2024. 11. 26. 12:58

강계 기생 무운(巫雲)의 수절(江界妓爲李倅守節)

무운(巫雲)은 강계(江界)[강계(江界): 평북(平北)에 있는 지명.]의 기녀이다. 그는 자색과 기예로 한 때 세상에 이름을 떨쳤었다. 서울에 사는 성진사(成進士)라는 자가 우연히 그 곳에 내려왔었는데, 무운이 그를 천침한 뒤로는 서로간에 정애가 몹시 돈독해졌는지라 성진사가 서울로 돌아갈 때에 이르러서는 피차간에 연연해하며 서로 차마 버리지를 못하였다. 무운은 성생(成生)을 보낸 뒤 다른 사람과는 일절 관계하지 않기로 마음으로 맹서한 뒤 양 다리 사이를 쑥으로 뜸질하여 부스럼 자국을 만들어 나쁜 병이 있다고 핑계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전후의 사또들을 일찍이 한 사람도 모시지 아니하였다.
대장 이경무(李敬懋)[이경무(李敬懋)(1728: 영조4-1799: 정조23): 조선 무신. 자는 사직(士直), 본관은 전주(全州). 무과에 급제, 어러 벼슬을 거쳐 금위 대장(禁衛大將)‧훈련 대장(訓練大將)‧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가 부임하자 그녀를 불러서 보고는 가까이 하고자 했다. 무운은 부스럼난 곳을 보여주며 말했다. 
“첩에게 이같은 나쁜 질병이 있으니 어찌 감히 가까이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너는 내앞에서 심부름하는 것이 좋겠다.” 
이후로 매일 수청(守廳)들었다가 밤이 되면 어김없이 물러났다. 이와같이 너댓달이 지나갔다. 
어느날 밤 무운이 홀연히 이경무 앞에 나아와 말했다. 
“첩이 오늘밤 잠자리를 모시기 원하옵나이다.” 
경무가 놀라며 말했다. 
“너는 이미 나쁜 질병이 있는 몸으로 어찌 잠자리를 모신다는 것인고?” 
“사실은 성 진사를 위하여 수절했었던 까닭에 쑥으로 뜸을 들여 그로써 남이 침범하는 곤란을 피했던 것입니다. 사또님을 모신지 이미 여러 달로 범백의 일을 가만히 살펴보니 사또님은 대장부요, 첩은 이미 기물(妓物)인즉 사또님 같은 대남자(大男子)를 어찌 가까이서 무심하게 모실 수 있겠습니까?” 
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잠자리에 들도록 하여라.” 
인하여 그 둘은 친압하였다.
이경무가 임기가 다 되어 장차 서울로 돌아가려고 할 때, 무운은 그를 따라가기 원했다. 이경무가 말했다. 
“나에게는 거느리고 기르는 세명의 첩이 있으니 너까지 또 따라가는 것은 대단히 긴치 않은 일이다.” 
이말을 들은 무운이 말했다. 
“그렇다면 첩은 마땅히 수절하겠나이다.” 
이경무가 웃으며 말했다. 
“수절이라고 하는 것은 성진사를 위하여 했던 수절과 같은 것인고?” 
이 말을 들은 무운은 발끈 얼굴빛을 변하며 칼로 왼손 넷째 손가락을 잘랐다. 이경무가 몹씨 놀란 나머지 그녀를 데리고 가고자 하였으나 무운 또한 듣지 않았다. 그들은 인하여 작별하였다.
그런지 십여년이 지난 후 이경무는 훈장(訓將)[훈장(訓將): 훈련대장(訓練大將).]으로 성진(城津)을 맡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성진진(城津鎭)[성진진(城津鎭): 함북에 있는 진으로 1746(영조22)년 설치했던 진.]을 새로 설치했는데, 이경무가 노련한 장수로 중망을 받았는 까닭에, 단기(單騎)로 성진에 부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진은 강계와 더불어 삼백여리의 땅을 접하고 있었다. 무운이 와서 알현하니 이경무가 흔연히 그녀를 맞이하여 쌓이고 막혔던 회포를 풀고 더불어 같이 처하게 되었다. 밤에 그녀를 가까이 하려고 하자 무운은 죽기를 한하고 굳게 거절하였다. 이경무가 그 까닭을 물었다.
“왜 그러한고?”
“사또님을 위해 수절하는 것입니다.”
“이미 나를 위해서 수절했다면 어째서 나를 거절하는 것인고?” 
“이미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기로 마음에 맹세하였으니, 비록 사또님이라 하더라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한번 가까이 하면 곧 훼절(毁節)하는 것입죠.” 
무운은 끝내 굳게 거절하였다. 일년여를 함께 같은 곳에서 살았어도 끝내 서로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사또가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무운 또한 그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기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후 이경무가 상처하자 무운이 달려가 조문하였고, 서울에 머무르다 상례를 마친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경무의 상을 당했을 때에도 또한 그렇게 하였고, 스스로를 운대사(雲大師)라고 호칭하고 종노(終老)하였다.

巫雲者江界妓也 姿色才藝 擅于一時 京居成進士者 偶爾下來 仍薦枕而情愛甚篤 及其歸也 彼此戀戀不忍捨 雲自送成生之後 矢心靡他 艾炙兩股間作瘡痕 托言有惡疾云 以是之故 前後官家 一未嘗侍 李大將敬懋之莅任也 招見而欲近之 雲解示瘡處曰 「妾有此惡疾 何敢近前」 李帥曰 「若然則汝可在前 使喚可也」 自此以後 每日守廳 而至夜必退 汝是四五朔 一夜雲忽近前曰 「妾今夜願侍寢矣」 李帥驚曰 「汝旣有惡疾 則何可侍寢?」 雲曰 「爲成進士守節之故 以艾炙之 以是避人之侵困 侍使道積有月 微察凡百 卽是大丈夫也 妾旣是妓物 則如使道大男子 豈無心近侍耶?」 李笑曰 「若然則可就寢」 仍與之狎 及苽熟將歸也 雲願從之 李帥曰 「吾有三妾之率育者 汝又隨去 甚不緊矣」 雲曰 「然則妾當守節矣」 李帥笑曰 「守節云者 如爲成進士守節乎?」 雲勃然作色 仍以刀斫左手四持 李帥大驚欲率去 則又不廳 仍以作別矣 後十餘年後 以訓將補城津 盖朝家新設城津鎭 而以宿將重望之 故單騎赴任 城津與江界 接壤三百餘里也 一日雲來現 而帥欣然逢迎 敍積阻之懷 與之同處 夜欲近之 則抵死牢拒 李帥問之此何故也 對曰 「爲使道守節矣」 李帥曰 「旣爲余守節 則何抵我也?」 雲曰 「旣以不近男子 矢于心 則雖使道不可 一近之則便毁節也」 仍堅辭 同處一年餘 而終不相近 及歸又辭歸渠家 其後李帥喪妻 雲奔喪而留京 過衰禮後 還下去 而帥之喪亦然 自號雲大師 仍終老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