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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 이야기-

淸潭 2017. 6. 21. 10:19

-봉림대군 이야기-

 

 

조선 17대 왕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이었다.

인조반정을 전후하여, 바다 건너 일본의 왕실에서는 딸 하나를 낳았다.

이 딸은 차차 성장하면서 인물이 매우 아름답고

슬기가 출중할 뿐 아니라 무술에도 빼어났다.

나이 열여덟이 되자 워낙 인물이 잘났던 까닭에

짝될 만한 남자를 찾지 못하였다.

하루는 그 처녀가 부모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소녀는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낭군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이 좁은 섬 안에는 그런 남자가 없으니

바다를 건너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소녀의 배필될 쾌남을 구하겠습니다."

그녀는 부모에게 하직을 하고

조선국으로 건너와 머리를 삭발하고 여승이 되어

팔도를 두루 돌면서 뛰어난 남자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대궐 문 밖에 다다랐다.

허다한 벼슬아치들, 재상들이 모두 대궐에

출입을 했지만, 아무도 그 처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봉림대군이 외출을 하다가 문득,

그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외모가 빼어난 여승을 보자,

대군은 호기심이 일어 그 여승에게

뒤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 여승은

무슨 생각을 했던지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봉림대군은 하인에게 명하여 대궐 안 방 하나를

정하여 그 여승을 거처하도록 하였다.

인물이 절색인 데다

문필이 빼어났고 행동까지 단아하여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게 생각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 자자하였다.

이러는 동안 세월이 흘러 일년이 되는

어느 날 새벽,대궐 안마당에 있는 마부가

황급히 뛰어와 마당에 엎드려 아뢰었다.

"대군마마께 아뢰오. 황공하옵게도

대궐의 천리마가 간 곳이 없습니다.

소인의 죄는 죽어 마땅하옵니다."

"무엇이라 하였느냐?"

놀란 것은 봉림대군이었다.

천리마의 행방을 좇을 즈음

한 무수리가 편지 한 장을

황급히 봉림대군 앞으로 와 전하였다.

"밤새 그 여승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봉서를 남기고 갔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섬나라 일본에서 태어나,

천하의 영웅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와

다행히 왕자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여느 사람은 다 몰라보는 저를 왕자님께서

알아보시고 머리까지 기르라 하셨으니

그것 만으로도 이 사람을 사랑하시고

아끼심인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1년을 두고 왕자님을 살펴보건데

작은 나라의 영웅은 되겠으나 큰 나라의

영웅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아 길을 떠나옵니다.

널리 용서하소서."

봉림대군은 괴이하게 여겼지만

그 여인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 일이 있은 수 년 만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대군은 형님인 소현세자와 볼모의 신세가 되어

청의 심양에 잡혀가 십 년이란 세월을 고스란히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청나라에서는 태종의 뒤를 이어

세조가 제위에 올라 천하를 통일하게 이르렀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이를 치하하는 사신을 보냈고

이를 만족하게 여긴 세조는 인조 이십오 년에

볼로로 잡혀갔던 조선국 사람들을 본국으로 돌려

보내기로 하고 인심을 크게 써서 잔치를 베풀었다.

호지(오랑캐의 땅)에서 눈물 속에 볼모의 세월을

보냈던 봉림대군은 청의 세조가 베푸는 잔치에

참석하게되었다.잔치 음식은 모두 고국에서 즐기던

음식들이었다.

봉림대군은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선듯 음식에 손이 가진 않았다.

"음식을 왜 들지 않으시는가?

조금도 어려워 말고 오랫만의 그대

고국에서 맛보던 음식을 즐기시라.

그리고

그대가 이곳을 떠나기 전

황후가 만나길 간청하니

짐과 함께 들어가 뵘이 어떨고?"

봉림대군은 여러 문을 지나

대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선녀와도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황후의 옷을 입고 보좌에 높이 앉아 있었다.

그 좌우에는 비빈들이 늘어 서 있고

모든 것이 눈이 부셨다.

"이 사람을 알아보시겠는지요?"

10년씩이나 들어보지 못했던

조선말이 여인의 입에서 나왔다.

"이 사람은 십여 년 전

그대의 본국에서 머리를 기르며

일년 동안이나 묵었던 여승입니다."

그녀는 천리 준마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심양까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때 사냥을 나온 세조의 눈에 띄어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가 영웅인 것을 알고 몸을 허락해

태자빈이 되었다가 이어 황후가 되었다는 경로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봉림대군에게

작은 나라의 영웅밖에 되지 못한다고 했던 연유는

다름이 아니라 밤에 주무실 때 방문 고리를 모두

걸고 주무셨기에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천하 통일을 할 만한 배포라면 무엇이 두려워

그처럼 작은 문을 단속하시겠는지요?

영웅이란 살벌한 전장에서

화살과 철환이 빗발치듯 해도

봄뜰을 거니는 것과 같거늘,

대군은 형적이 나타나지도 않았던

것에도 너무 두려워하시는 것이었소.

그러나 이 말은 한 아녀자의 수다라 이기시고

깊이 새겨두진 마시오. 내 십여 년 전 조선에서

얻은 지기의 은혜를 한 번도 잊은 때가 없었소이다.

선황께서 병자년에 동병하셨을 때,

군사로 하여금 무고한 백성을 욕보이지 말도록,

또 왕궁을 노략질하지 않도록 성심껏 간곡한

소청을 해주었소이다.

마지막 한 가지 부탁은 청국을 거역마시고

화를 입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또 후일에는 조선국 왕위에

오를 것이 틀림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봉림대군은 뜻하지 않았던 인연에 고마우면서도

그간 볼모로 잡힌 세월에 치를 떨었다.

어찌하면 날랜 군사 십만 명을 얻어서

추풍에 구련성을 깨뜨려 부수고

크게 부르짖어 오랑캐를 짓밟곤

노해하며 춤추며 백오경에 돌아올고.

봉림대군은

심양을 떠나면서 더욱 원한의 결심이 굳어졌다.

봉림대군은 고국에 돌아와서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되었다.

효종은 안타깝게도 항상 북벌계획을 수립하고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으나

그 기회를 얻진 못하였다.

오히려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대동법을 실시했고 상평통보를 화폐로 사용하는 등

경제 시책에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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