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절을하는 의미와 공덕

淸潭 2016. 6. 6. 09:59

절을하는 의미와 공덕




초심자들은 절에가서 절을 할때 왜 하는지 조차 모르고, 그냥 절 하면 좋다 하니까.....
남들이 하니까 좋을듯 하여 무의미 하게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절을 하는 의미와 7가지의 예배를 알려 드리고자 한다.


부처님께 절을 하는 의미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침착해져서,
주의력이 생기고,
정진력이 생기며,
지혜를 열리게 해줌니다.
마음이 산란하고 약하거나,
성급한 사람,
성내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도 절을 계속하게 되면
그 공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증진이 된다고 하셨다.



천축의 늑라삼장이 말씀하신 절의 7가지의 예배


① 아만례 (我慢禮) : 몸은 절을 하지만 마음에는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 아만심이 깃들어 있는 예배.


② 구명례 (求名禮) : 입으로는 부처님을 부르고 공경을 나타내지만 마음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예배.


③ 신심공경례 (身心恭敬禮) : 입으로는 부처님을 부르고 마음으로도 부처님 상을 경례하는 공경 공양하는 예배.


④ 발지청정례 (發智淸淨禮) : 슬기로운 마음이 밝아서 부처님의 경계를 통달 하며 내외가 청청하고 걸림이 없어,
   한 부처님에게 경배 하는 것이
   일체 부처님에게 경배 하는 것이고
   일체 부처님에게 경배 하는 것이
   한 부처님에게 경배 하는 곳과 같이서
   마음이 곧 부처를 떠난 것이 아닌 경계의 예배.


⑤ 변입법계례 (변入法界禮) : 자기 몸과 마음이 근본을 따지면 법계를 떠난 것이 아니 어서 성품과 현상이 평등하여 본래 더하고 줄 것이 없는 경계.


⑥ 정관수성례 (正觀修誠禮) : 마음이 바른 생각으로 스스로 예불 하지만  자신의 불신 (佛身)에 예불 하는 것이 된다. 결국은 부처님에게 절하는 것이 자신의 부처님을 깨닫게 된다.


⑦ 실상평등례 (實相平等禮) : 올바르게 관(觀)하는 법에 본체와 현상적 작용이   둘이 아님을 말하는 것으로 예불하는 속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서 예불하는 나와 예불 받는 부처님의 성품이 한가지로 통하며 공적하니 이것이 실상평등이라 한다.
 
 ★ 절의 효능 ★
 
절은 그 행위 자체로서도 큰 공덕이 됨을 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몸을 움직여 수억 겁 찌든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수행이 절이라면, 절은 많이 할수록 좋다.
 
절은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꺽고 마음을 비우게 한다. 그리고 절은 身.口.意 三業으로 익힌 업을 맑히는 수행이다.
 
또한 절은 척추와 무릎을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온몸의 전신 운동 효과가 있어 신진대사가 좋아 지게 하고 궁극에는 정신 통일을 이루어서 망상에서 부터 벗어나게 한다.
 
좁은 이마를 넓은 땅에 붙여 절할 수 있음은 참으로 큰 복이요. 공덕을 쌓고 3업을 맑힐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절은 나를 낮추고(下心) 상대의 행복을 빌면서 하는 것이 절 이다. 우리 육체 중에서 값으로 따져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부분이 머리이다. 머리는 바로 보물 창고이다. 이 머리의 상단이 이마이며, 이 소중한 이마를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땅바닥에 대는 것이 절 이다.
 
절하는 자세도 특별한 것은 없다. 부처님과 보살과 일체중생을 바로 볼 줄 아는 마음이 싹터야 바른 자세가 나온다.
우리에게 이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보살이다. 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며, 덕화의 상징이다.
 
 문수와 보현만 보살이 아니고, 앞에 있는 책상, 의자, 물병, 물잔, TV등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고, 도움을 주는 모든 것들이 다 보살이다. 우리에게 이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모든 사물에게도 절 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한다.
 
또한 절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참회하는 사람은 감사할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참회의 근본이다. 참회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본 사람만이 진짜 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절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천배보다도 정성을 담은 단 한 번의 참회의 절이 더 중요하다.
 
유명한 세계적 요가학자 "젠스 휴이트"가 말하기를 "절은 모든 요가의 집대성" 이며  "절 보다 더 뛰어난 요가는 없다"라고 했다. 그러니 절을 인상쓰고 할 이유가 전혀 없고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을 의식하며 억지로 할 이유가 없다.
 
 어린 아이들은 절하는 것을 무척 귀찮게 받아 들인다. 그런데 후일 얘기는 절이 가장 불교적이며 그 때문에 신심이 생겼다고 한다.
 
성철 큰 스님께서도 절수행을 많이 강조 하셨고 당신 스스로도 열반에 드실 때 까지 매일 108배를 하셨다.
 
도는 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몸에 있다. 삼천배를 해보지 않은 자와는 불교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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