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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話] 김현감호(金現感虎)

淸潭 2015. 12. 12. 10:30

   김현감호(金現感虎)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8일로부터 15일까지 서울의 남자와 여자들은 흥륜사(興輪寺)의 전탑(殿塔)을 다투어 돎으로써 그것을 복회(福會)로 삼았다.

  원성왕 때에 낭군 김현(金現)이 밤이 깊도록 홀로 탑을 돌면서 쉬지 않았다.

 (그 때) 한 처녀가 (또한) 염불을 하면서 따라 돌았으므로 서로 정이 움직여 눈을 주었다. 돌기를 마치자 (그는 처녀를) 구석진 곳으로 이끌고 가서 관계했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으나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가서 서산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에 들어가니 늙은 할미가 그 처녀에게 물었다.

"함께 온 이가 누구냐?"

처녀는 그 사실대로 말했다.

늙은 할미는 말했다.

"비록 좋은 일이지만 안 한 것보다 못하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일이니 나무랄 수도 없다. 구석진 곳에 숨겨 두어라. 네 형제가 나쁜 짓을 할까 두렵다."

(처녀는) 김현을 이끌고 가서 구석진 곳에 숨겼다.

조금 뒤에 세 마리의 범이 어르릉거리면서 오더니 사람의 말을 지어 말했다.

"집안에 비린내가 나는구나! 요깃거리에 어찌 다행이 아닐꼬?"

늙은 할미와 처녀는 꾸짖었다.

"너희 코가 잘못이지 무슨 미친 소리냐?"

그 때 하늘에서 외쳤다.

"너희들이 생명을 즐겨 해침이 너무 많다. 마땅히 한 놈을 죽여서 악을 징계하겠다."

세 짐승은 그 소리를 듣자 모두 근심하는 기색이었다. 처녀는 말했다.

"세 분 오빠가 멀리 피해 가서 스스로 징계하겠다면 제가 그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모두 기뻐하며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치면서 도망해 가 버렸다.

처녀는 들어와 김현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낭군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부끄러워 짐짓 사양하고 거절했으나 이제는 숨김 없이 감히 진심을 말하겠습니다. 또한, 저와 낭군은 비록 같은 유는 아니지만 하룻저녁의 즐거움을 같이했으니 부부의 의를 맺은 것입니다. (이제) 세 오빠의 악은 하늘이 이미 미워하시니 우리 집안의 재앙을 제가 혼자 당하려 하는데, 보통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날에 죽어서 은덕을 갚는 것과 같겠습니까? 제가 내일 시가에 들어가 심히 사람들을 해치면 나라 사람이 나를 어찌 할 수 없으므로, 임금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로써 사람을 모집하여 나를 잡게 할 것입니다. (그 때) 낭군은 겁내지 말고 나를 쫓아 성 북쪽의 숲 속까지 오시면 나는 낭군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람과 사람끼리 관계함은 인륜의 도리지만 다른 유와 관계함은 대개 떳떳한 일이 아니요. (그러나) 이미 잘 지냈으니 진실로 하늘이 준 다행이 많은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서 한 세상의 벼슬을 바랄 수 있겠소?"

"낭군께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 제가 일찍 죽음은 대개 하늘의 명령이며, 또한 제 소원입니다. 낭군의 경사요, 우리 일족의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제가 한 번 죽음으로써 다섯 가지 이익이 갖추어지는데, 어찌 그것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하여 절을 지어 불경을 강(講)하여 좋은 과보(果報)를 얻는 데 도움이 되게 해 주신다면, 낭군의 은혜는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겠습니다."

마침내 서로 울면서 작별했다.

 다음날 과연 사나운 범이 성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들을 해침이 심하니, 감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원성왕이 이 소식을 듣고 영을 내려 말했다.

"범을 잡는 사람은 2급의 벼슬을 주겠다."

김현이 대궐로 나아가 아뢰었다.

"소신이 그 일을 해 내겠습니다."

(왕은) 이에 벼슬부터 먼저 주어 그를 격려했다.

김현이 칼을 쥐고 숲 속으로 들어가니, 범은 변하여 낭자가 되어 반가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젯밤에 낭군과 정이 서로 결합된 일을 낭군은 잊지 마십시오. 오늘 내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모두 흥륜사의 장을 (그 상처에) 바르고 그 절의 나발 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입니다."

(낭자는) 김현이 찼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지니 곧 범이었다.

김현은 숲에서 나와 거짓 핑계로 말했다.

"내가 지금 범을 쉽사리 잡았다."

(그러나) 그 사유는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시키는 대로 상처를 치료하니 그 상처가 모두 나았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범에게 입은 상처에는 또한 그 방법을 쓴다.

 김현은 벼슬하자 서천(西川)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라 이름하고, 상시 범망경(梵網經)을 강하여 범의 저승길을 인도하고, 또한 범이 제 몸을 죽여 자기를 성공하게 한 은혜에 보답했다. 김현이 죽을 때에 지나간 일의 이상함을 깊이 감동하여 이에 붓으로 적어 전기를 만들었으므로 세상에서는 (그 때) 비로소 듣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글 이름을 논호림(論虎林)이라 했는데 지금까지 일컬어 온다.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