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세작의 장기는 몸뚱이에 있지 않고 머릿속에 있다. 그의 머리에서 쏟아지는 꾀는 나와도 나와도 끝이 없는 화수분이다. 눈은 쏙 들어가고 광대뼈는 톡 튀어나온 깡마른 얼굴이지만 냄새 맡는 데는 삽살개 저리 가라다. 항상 눈을 깔고 다니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고, 십리 밖 여인네 옷 벗는 소리도 들린다는 토끼귀를 가졌다.
문제는 그 빼어난 몸과 마음의 재주를 나쁜 쪽으로만 써먹는 데 있다. 세작(細作)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얻었다. 노세작은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노는 차원이 달랐다. 또래들이 수박 서리, 콩 서리를 할 때 그는 흰염소 새끼를 싸게 사서 먹물을 칠해 다음 장날 흑염소 새끼로 둔갑시켜 비싸게 팔아 치웠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사술(邪術·바르지 못한 수단을 잘 둘러대는 요사스러운 술법)은 더욱더 세련돼 그가 눈독을 들이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저잣거리 주막집 노름판에서도 노세작은 현란한 속임수로 작은 판은 잃어주고 큰판은 싹쓸이를 해버린다. 그렇게 돈을 잃은 덩치 큰 왈패 녀석 둘이 돈을 뺏으려고 완력으로 노세작을 덮쳤으나 벽과 천장을 날아다니는 노세작의 발차기에 순식간에 여덟 팔자로 뻗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사경(새벽 1시에서 3시 사이) 무렵, 노름판에서 나온 노세작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만석꾼 부자 권 참사네 담을 뛰어넘어 나오는 도둑을 멀찌감치서 보게 되었다. 노세작은 도둑을 잡아 권 참사에게 사례를 받는 하수(下手) 짓을 하지 않았다.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뒤를 밟아 도둑의 집에 따라 들어가서는 담판을 짓고 도둑이 훔친 패물 주머니의 반을 받아냈다.
며칠 후, 그날 밤도 노름판에서 적당히 돈을 긁어내고 주모의 분냄새에 이끌려 육덕진 주모를 이리저리 희롱하다가 눈썹 같은 그믐달을 보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노세작은 밤길을 갈 땐 언제나 담 밑으로 바짝 붙어 가거나 길가 풀숲에 몸을 숨겨서 걷는다. 마침 장 진사네 집 담을 따라 걸을 때였다. 담 안에서 여인네와 남정네 소리가 소근소근 들리더니 뒷담 쪽문을 열고 남정네가 나와 두리번거리다가 빠른 걸음으로 싸늘한 새벽공기를 갈랐다. 노세작은 순간적으로 간부(姦夫)를 따라가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차림새가 워낙 남루해 우려낼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체만 쪽문 밖으로 내민 채 간부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장진사의 미망인이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려 할 때 잽싸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너는 누구냐?”
깜짝 놀란 미망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큰소리칠 입장이 아닐 텐데요, 마님.”
노세작이 배시시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마님이 얼른 금비녀를 뽑아 그에게 입막음으로 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 낮에 다시 오게.”
양반에 천석꾼 부자인 장진사가 장가간 지 1년도 못 채우고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청상과부가 된 마님이다. 이십년을 수절해 지난 단옷날엔 사또로부터 열녀상까지 받았다. 이런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노세작은 “금비녀 하나로는 어림도 없지”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집을 나왔다.
이튿날 점심 나절, 느지막하게 일어난 노세작은 상투를 새로 틀고 갓을 쓰고 새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뒤 염소 수염을 쓸어내리며 장진사 집으로 갔다. 뒷담 쪽문이 아니라 대문 앞에 서 “게 있느냐~” 큰소리를 쳤다. 삐거덕 대문이 열리며 행랑아범이 고개를 내밀었다.
“안방마님과 만나기로 약조가 있었느니라. 어험어험!”
“어서 들어오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문 안을 들어서자 기다리던 포졸들이 노세작을 번개처럼 포박했다. 사또까지 와서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산천이 울리도록 고함쳤다. 지난밤, 쪽문을 빠져나간 남루한 차림의 간부는 암행어사로, 안방마님의 친정 막냇동생이다. 천하의 노세작도 헛짚을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