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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綿(연면)히 이어져 온 한국여성의 氣槪

淸潭 2015. 11. 29. 12:00

金庾信(김유신) 장군 부인에서 코레일 최연혜 사장까지우리의 說話集(설화집), 歷史書(역사서)를 보면 웬만한 남성은 저리 가라 할 만한 女丈夫(여장부)들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溪西野譚(계서야담)》 《記聞叢話(기문총화)》 《靑邱野談(청구야담)》 등에 실려 있는 임진왜란 당시의, 金千鎰(김천일) 의병장의 부인에 관한 것이다. 그 여인은 시집을 와서는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한다. 그것이 집안에 말이 되자, 그녀는 할 일이 있어야 일을 할 것 아니냐고 했다 한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농사지을 땅을 내 주었다. 이에 그녀는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풍성한 수확을 올리고는 일꾼들을 동원해 밭을 일구어 큰 재산을 모아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을 굶지 않게 도와주었다. 또 그녀는 밭에 박을 심어 바가지를 많이 만들어 두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녀는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모아, 남편 金千鎰 장군 휘하의 군사가 되게 했다. 그리고 만들어 두었던 바가지에 옻칠을 해 군사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며 쓰게 했다. 그녀는 의병들로 하여금 한 번씩 쇠로 만든 바가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버려두게 했다. 그것을 본 왜병들은 이렇게 무거운 쇠바가지를 옆구리에 차고 나는 듯이 다니는 조선 군사들은 모두 壯士(장사)라고 생각하고 겁이나 범접을 못했다 한다.

그런데 우리의 歷史書(역사서) 등에는 그런 전설이 아닌 실제로 마음이 깊고 생각이 큰 여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三國史記(삼국사기)》 「金庾信(김유신)」 條(조)에 실려 있는, 金庾信 장군의 부인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新羅(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양국의 이해관계로 唐(당)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다.

金庾信의 아들 元述(원술)은 그 전투에서 아군이 패하자 적진에 돌진해 죽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관 淡凌(담릉)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죽기보다 일단 목숨을 구한 다음 다시 전공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만류하는 바람에 살아 돌아왔다. 이를 안 金庾信은 그가 王命(왕명)을 욕되게 했다 하여 처형하려 했으나 왕이 그것은 元述과 같은 한 사람의 裨將(비장)이 혼자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만류해 元述은 죽음을 모면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金庾信과 元述의 父子(부자)의 인연은 끝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金庾信이 죽자 元述은 그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드리겠다고 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지금 내가 과부가 되었으니 三從(삼종)의 義(의)를 좇아 아들을 따라 살아야 하겠지만, 원술 같은 자는 이미 그 先君(선군)에게 아들 노릇을 못 했는데 내가 어찌 그 어미가 될 수 있으랴.” 하고 끝내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한다. 元述의 어머니인들 자기 몸으로 낳은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그런 작은 정에 얽매였다가는 ‘臨戰無退(임전무퇴)’라는 新羅 젊은이들의 기상을 무너뜨릴까를 우려해 그렇게, 눈물을 안으로 삼키고 혈육을 문전에서 내쫓은 것이다.

또 한 사람 존경할 만한, 생각이 깊은 여성은 忠武公(충무공) 李舜臣(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卞(변) 씨 부인이다. 李殷相 선생이 쓴 《李忠武公一代記(이충무공일대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실려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부디 네가 직접 조선에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하여라”고 했다 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는 혹시 자식이 잘못될까, 그 安危(안위)를 걱정한 것이다.


그런데 李舜臣 장군이 출전에 임해 그 어머니 卞 씨에게 하직인사를 드렸을 때 부인은, “잘 가거라. (가서) 나라의 욕됨을 크게 씻어라. (好赴 大雪國辱, 호부 대설국욕)”고 했다 한다. 참으로 이 민족의 영웅을 낳은 어머니다운 의연한 말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최근 철도노조 파업사태 때 현존 인물, 코레일 최연혜 사장에게서 그런 女丈夫의 기개를 보았다. 노조 측이 말도 아닌 불법 파업을 하자, 그녀는 단 하루도 집으로 가 편한 잠을 자지 않고 근무처의 간이침대에서 起寢(기침)을 하면서, 마치 전장에 선 야전사령관과 같은 불퇴전의 자세로 대처했다. 그뿐 아니라 대체인력 모집 광고를 내 놓고는, 직장 복귀를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발하는 등 일을 몰아가는 그녀의 빠른 行步(행보)며 빈틈없는 手順(수순)은 어디 한 군데 눈 가는 데가 없었다. 그녀의, 상대의 퇴로를 막아서서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정면 돌파로 몰고 가는 모습은 근래에 보지 못하던, 사람의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들 속에는 金庾信, 金千鎰 장군의 부인, 李舜臣 장군의 어머니 같은 훌륭한 여인들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민족의 내일은 결코 어둡지 않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