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느 산골에 어떤 늙은 부부가 아들 하나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영감을 홀로 두고서 할머니가 먼저 덜컥 죽어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말벗이 없어서 심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지겹고 따분한 까닭에, 세월이 빨리빨리 흘러가서 자기도 얼른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한숨을 쉬면서 "세월아 네월아!"하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매일 밤마다 그렇게 탄식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 못한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버님. 매일 저녁 세월아 네월아 하시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아들은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세월아 네월아'가 무엇인지, 또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서 '세월 네월'을 구해 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개나리 봇짐을 챙겨 짊어지고서 길을 떠났습니다. 마을마다 다니면서,
"세월아 네월아 구합니다! 세월 네월 있으면 파십시요. "
하고 소리를 외치고 다녔지만, 아무도 팔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전국을 다 돌아다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마을은 모두 다녔으니 산으로 가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 높은 산 밑에 가니까, 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보시오, 말씀 좀 물읍시다. 혹시 세월 네월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세월 네월은 왜 찾소?"
"세월 네월을 사려고 그럽니다."
"그래?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려면 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바둑 두는 노인들한테 물어보시오."
젊은이는 농부가 시키는 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과연 산꼭대기에 이르니 넓은 바위가 있고 그 위에 수염이 허연 노인들이 서너 명 둘러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습니다. 넙죽이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인사를 해도 돌아보는 이도 없고 말대답을 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랫 동안 사정을 하였더니, 마침내 한 노인이 돌아보며,
"어디서 온 젊은이냐?"
"예-, 아무 곳에서 찾아온 사람입니다."
하고는, 그 동안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아버님을 위해 '세월 네월'을 꼭 구해가야 하니 어디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 효성이 지극한 젊은이로구나. 그런데 여기는 그 책이 없는데, 저쪽 골짜기에 내려가 보면 알 도리가 있을 걸세."
젊은이는 다시 노인들이 가르키는 골짜기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강이 앞을 가로 막고 있어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강가에 종일 서서 울었더니, 난데없이 용 한 마리가 물을 헤치고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웬 사람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와서 울고 섰느냐?"
"예, 아버님께서 세월 네월을 원하시기 때문에 세월 네월을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래? 그러면 내 등에 타라!"
용은 물결을 헤치고 단숨에 강을 건너 주었습니다. 젊은이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 소원도 좀 들어다오. 만일 세월 네월을 아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하늘에 등천하는 법도 알 터이니 말이다. 이 강에 살던 다른 용들은 여의주 하나만 얻어도 하늘로 올라갔는데, 나는 여의주를 세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데도 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지 그 까닭을 물어봐 주게."
젊은이는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길을 훨훨 떠났습니다. 어느 곳에 당도하니 큰 솟을대문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문지기가 놀라면서,
"여기는 날짐승도 못 오는 곳인데 어떤 사람이 여기까지 왔느냐? 어림없으니 당장 돌아가라!"
고 하였습니다.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문을 좀 열어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아버님의 탄식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들여보내주지는 못하더라도, 내 말씀이나 좀 전해 주시오."
"무슨 말을 여쭐꼬?"
"아무 곳에 사는 아무것이가 아버님이 원하시는 세월 네월을 구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좀 여쭈어 주시오."
문지기가 들어가더니 마침내 문을 열어주라는 허락을 얻어왔습니다. 젊은이가 대문을 들어서니 포르르 날아갈 것 같은 기와집이 웅장한데, 아까 산꼭대기에서 본 듯한 허연 수염의 노인이 사랑문을 열어젖히고 의젓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소생은 아무데 사는 아무 것이 올시다."
"그래 오늘 자네가 올 줄 알았다.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
"아버님께서 혼자 적적하신 탓인지 주야로 세월 네월을 원하시는 까닭에 세월 네월을 구하로 왔습니다."
"그래? 자네는 효성이 지극하니까 내가 세월 네월을 주지!"
작은 벽장문이 무수하게 많은데, 그 가운데 문 하나를 열고서 붉은 책을 한 권 꺼내가 주고 빨간 보자기에 싸 주었습니다. 젊은이는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보자기를 들고 나오다가 용의 부탁을 깜짝 잊어버렸습니다. 솟을대문의 용마루를 보는 순간 용의 부탁이 생각났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절을 하고는 용의 말을 대신 여쭈어 보았습니다.
"다른 용들은 다 하늘에 올라갔는데, 저를 태워 준 용은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 있는데도 아직 하늘로 등천하지 못하는 까닭이 어디 있는지, 여쭈어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허허, 그놈 고약한 놈! 하늘로 등천하는 데에는 여의주가 하나만 있으면 그만인데 그놈은 세 개씩이나 가지고 있으니, 욕심이 많아서 못 올라가지! 다른 용들처럼 여의주를 하나만 가지고 있었으면 벌써 올라갔을텐데."
젊은이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용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신선에게 들은대로 일러주었습니다.
"다른 용은 여의주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당신은 세 개나 가지고 있어서 욕심이 많아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답니다."
젊은이의 말을 들은 용은 "그래?" 하고서, 입안에 머금었던 여의주 두 개를 '칵!'하며 토해내어 젊은이에게 주면서,
"이걸 가지고 가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강을 건네주었습니다. 젊은이는 세월 네월이 든 빨간 보자기와 여의주까지 얻어서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병이 들어 누웠습니다.
"아버지, 여기 세월 네월을 구해왔습니다."
"뭣이? 세월 네월이 어디 있다고 니가 세월 네월을 구해왔단 말이냐?"
"예, 제가 구했습니다. 일어나셔서 세월 네월을 보십시오."
그러니 영감이 벌떡 일어나서 책보를 받아가지고 풀어보니, 책이 한 권 들었는데, 그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참 세월이 언제 가는지 네월이 언제 갔는지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내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책을 읽으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사는 재미를 느낀 것입니다. 책 속에 행복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지요. 용은 여의주를 나누어 준 까닭에 하늘로 등천하는 성취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길이 성취하는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지요. 아들은 용에게서 받은 여의주로 큰 부자가 되어서 잘 살았습니다. 맹목적이지만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지극한 까닭에 뜻밖의 보물까지 얻어서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소 엉뚱한 줄거리이지만, 우리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욕심 없는 삶의 성취, 지극한 효성의 보람을 함께 일깨워준 이야기입니다. (94. 4. 10., {현대정공}사보 1월호)
출처: http://limjh.an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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