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하는 법(5)
12. 이 일은 敎와 다르다.
: 이 일은 경(經)의 가르침과는 합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오래도록 대승의
업을 닦아온 사람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성문의 가르침이나 연각과 같은
소승들이 알 수 있겠는가?
삼현,십성이 어찌 경의 가르침을 통달하지 못했을까마는 이 일을 말하면
삼승의 두려움에 담(膽)이 떨리고 십지의 보살도 깜짝 놀란다.
등각보살은 설법을 구름이 온 하늘을 가득 덮듯, 비가 온 세상을 다 적시듯
하면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며 무생법인에 들어 갔음에도 오히려
'소지우(所知愚)로 인해 도(道)와는 완전히 어긋난 사람'이라고 하나, 그 밖의
중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대개 이 일은 박지범부(薄地凡夫)에서부터 완전히 부처와 바탕이 같지만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바이다.
믿는 이는 이 공부를 감당할 그릇이 되고, 믿지 못하는 자는 그릇이 못된다.
이 종승(宗乘)에 들어가고자 하는 수행자들은 모두 믿음으로 들어가기 때문
이다.그런데 '믿음'에는 얕은 것과 깊은 것이 있고 바른 것과 삿된 것이
있으니 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얕다'는 것은 무릇 법의 문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어느 누군들 법문을 믿지
않을까마는 단지 법문만 믿고 자기의 마음은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
'깊다'는 것은, 모든 대승의 보살들도 오히려 믿음을 갖추지 못한 것이니,
華嚴疎에 이르기를 "법을 설하는 자가 있고, 법을 듣는 대중이 있다고 보면,
여전히 아직 믿음의 문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라고 했다.
예를 들어 '마음 그대로가 부처다'라는 말을 누군들 믿지 않을까마는, '네가
부처냐?' 하고 물으면, 이 믿음은 밀려나고 인정하지 못한다.
<법화경>에 이르시기를,
"모든 생각을 다해 헤아릴지라도, 佛智는 헤아리지 못한다." 라고 했는데
어째서 생각을 다해 헤아려 보려는 마음이 있는가? 대개 믿음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삿된 믿음'이란,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면 바른 믿음이라
하고, 마음 밖에서 법을 취하면 삿된 믿음이라 한다.
반드시 깊이 참구 하여 자기의 마음을 밝혀서, 몸소 실제로 '그대로가 부처'인
경지를 밟아 보아, 의심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바른믿음'이라
한다.
그렇지 않고,
흐린 눈에, 얼굴만 큰 덜떨어진 놈이, 간단한 것도 의심하듯, 단지 '마음이
부처'라고 말만 할 뿐, 실지로는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일러 삿된
믿음이라 한다.
13.선(禪)에서의 정(定)의 의미
: 古人은 복숭아를 따면서도 정(定)을 익혔고, 호미로 밭을 매면서도 定을
익혔으며, 갖가지 소임을 보면서도 정을 익혔으니, 어찌 오래도록 앉아
마음을 막고 내리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한 뒤에야 그것을 정이라 여겼
겠는가? 이같은 것은 삿된 定이지, 선에서의 바른 의미는 아니다.
六祖스님이 이르시기를
" 부처님은 항상 定에 들어 계셔서, 定에 들어 있지 않은 때가 없다." 고 하시니,
모름지기 본체를 徹見해야만 이러한 定과 相應 할 수 있다.
석가모니께서 도솔천에서 내려오고, 황궁에 내려오시며, 설산에 들어가고,
明星을 보고 幻과 같은 중생들을 깨우치신, 이 모든것이, 이 定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움직이는 경계에 빠져 죽었을 것이니, 그러고서야
어찌 定이라 할 수 있으리오.
움직이는 경계 속에서도 그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을 구하려 해도 할 수 없고
고요한 경계속에서도 그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을 구하려 해도 할 수 없고
고요한 경계속에서도 또한 고요함이 일어나는 곳을 구하려 해도 할 수 없다.
動 과 靜이 이미 일어나는 곳이 없다면 무엇으로 경계를 삼을까? 이 뜻을
알면 완전히 하나뿐인 정체가 꽉 차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딴 것이 있을
수 없으리라.
14. 세간법(세속의 잡다한 일)에 물들지 말라.
: 공부를 지을 때는 세간법에 물들어서는 안된다.
佛法의 일이라 할지라도, 한 점만큼도 물들어서는 안되거늘, 하물며 세간의
법이겠는가? 만약, 진정으로 화두가 현전하면, 얼음을 밟아도 차가운 줄
모르며, 불을 밟아도 뜨거운 줄 모르며, 가시나무 숲을 몸을 옆으로 해서 곧장
지나가더라도, 걸리는 일이 없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세간법속에서
마음대로 부딪혀도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모두 경계에 굴리어 나자빠지게 되니, 공부가 한
덩어리가 되기를 바라더라도 그런 날은 나귀(驢年)해가 되어도 꿈에서조차,
만나지 못할 것이다.
15. 글에서 찾지 말라.
: 공부인은 글에서 찾아 말귀를 쫓거나 말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공부에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장애를 가져와서, 진실한 공부를
도리어 반연하여 생각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니, 마음 갈 곳이 없어지길
바란들, 어찌 될 수 있겠는가?
16. 비량(比量)-사량계교 -을 조심하라.
: 공부를 지을 때는 무엇보다 비량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런저런 마음을 모아들여 따져보게 되면 道와는 더욱 멀어지는 것이니,
이런식으로는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계속 해 봤자, 공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만약 疑情이 頓發한 놈이라면, 의정이 허공을 가득 채울지라도 허공이라는
이름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마치, 은산철벽속에 앉은것처럼 다만 살길을
얻고자 할 따름이니, 만약 살길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安隱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만 공부해 가노라면 시절이 이르면 저절로, 이 상황을
거꾸러뜨려 버릴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17. 사견(邪見)을 조심하라.
: 근래 삿된 스승들이 있어서, 학인들에게 '이 일은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가르치거나, '古人치고 일부러 공부를 한 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가장 害毒이 甚한 말이다.
후학들을 미혹케하고 그릇되게 하니, 지옥에 들어가기 쏜 화살 같으리라.
<大意선사 坐禪銘>에 이르기를,
참구할 필요 없다는 말, 절대로 믿지 말고,
옛 성인들이 쉬지 않고 애쓰신 것을 본보기로 삼아라.
비록 낡은 누각의 버려진 발이라지만,
한번에 영영 황폐시켜서야 되겠는가?
만약 '참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문득 '이치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타고난 미륵이요, 자연 석가니, 이런 무리를 불쌍한자라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도 참구해 본적이 없다가, 혹 고인의
일문일답을 보고 문득, 깨치기라도 하면 드디어 識情(알음알이)으로
이해 해 가면서 남을 속이지만, 한 바탕 열병이라도 앓게 되면 연일,
괴롭다고 절규하게 되니 평생동안 안 것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혹은 목숨을 마칠 때 방게가 끓는 냄비 속에 들어간 듯, 손발을 바삐
움직이며 발버둥치게 되니, 그때 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 있을 것인가?
황벽선사가 이르시길,
塵勞를 멀리 벗어나는 건 보통일이 아니니,
고삐를 바짝 조여 잡고 한바탕 애쓸지니라,
한번 매서운 추위가 뼈를 파고드는 고비를 넘기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가 꽃을 피워 그 향기 코 찌를 일 있으리...
하니, 이 말씀이 아주 친절하다.
만약 게송으로 때때로 자신을 경책한다면 공부가 자연히 향상될 것이다.
백리 길을 갈 때, 한 걸음을 걸으면 갈 길이 한 걸음 줄어들지만,
가지 않고 길 가운데서 서 있기만 하면, 설사 고향 소식을 분명하게 설명 할 수
있다 한들 집에는 끝내 도착하지 못하리니, 어느쪽을 선택해야 하겠는가!
18. 간절히 공부하라.
: 공부에 가장 요긴한 것은 '간절 切'자다. 이 간절이 가장 함이 있는 것이나,
간절하지 않으면 나태해 지고, 나태심이 생기면 제멋대로 하게 되고 멋대로
굴다보면 못할 짓이 없게 된다. 만약, 마음 씀씀이가 진실하고 간절하면,
放逸과 懶怠가 어디서 생기겠는가?
간절할 수만 있으면 고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고,
生死심을 부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 간절을 버리고 따로 불법을 구한다면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달리는 것이니, 어찌 공부한다고 다 공부라 말 할 수 있으리오?
간절하면 어찌 그 같은 허물만 여의겠는가, 즉시에 善, 惡, 無記,이 셋을 뛰어
넘어버린다. 한 마디 화두에 대해 마음을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쓰면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화두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도거(悼擧)와 혼침(昏沈)이 없어지고 화두가
현전하면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간절이란 이 한 마디가 가장 친절한 말이니, 마음씀이 간절하면 공부가
간격이 없으니 魔가 들어올수 없고, 마음씀이 간절하면 '있다 없다' 등을
헤아리는 생각이 생기지 않으니 외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19. 화두가 현전(뚜렷이 잘될때) 할 때.
: 공부를 지어가는 사람이 걸으면서도 걷는줄 모르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 모르면, 이를 ' 화두가 현전한다' 고 한다. 의정을 부수지 못했으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있는 줄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가고, 앉고, 하는 것이랴!
20. 잡사(雜事)를 일삼지 말라.
: 공부를 지을 때는 詩를 짓거나, 게송을 짓거나, 글을 짓는 것을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한다. 시나 게송을 짓는데 성취가 있으면 詩僧이라 하고
문장이 교묘하면 文字僧이라 하는 것이니, 참선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무릇 역순의 경계를 만나 생각이 움직이면 곧장 알아차리고 화두에
의심을 일으켜서 경계에 의해 마음이 굴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바짝 쪼이지 말라' 하지만 이 말이 가장 사람을 잘못 되게
하니공부인은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21. 空에 떨어질까 겁내지 말라.
: 공부인들이 흔히 공에 떨어질가 겁내곤 하는데, 화두가 현전한다면 어찌
비게 될 것이며, 다만 이 '공에 떨어질까 겁내는 생각' 조차 비워 없애지
못했거늘, 하물며 어떻게 화두가 현전하겠는가!
22. 疑情을 부수지 못했으면,
: 공부를 지을때, 의정을 부수지 못했으면,, 깊은 연못에 다다르거나, 얇은
얼음을 밟을 경우에, 털끝만큼이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곧장 목숨을 잃게
되는 것과 같이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의정을 부수지 못하면 큰 이치를 밝히지 못했기에, 살아서는 평생 중음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고, 죽어서는 업식을 따라가다가 몸뚱이가 바뀌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되는 꼴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의심에 의심을 더하여 화두를 들어서, 밝히지 못한 것은 결정코
밝히고 부수지 못한 것은 결정코 부숴야 한다.
비유컨대 도둑을 체포한 뒤엔, 모름지기 숨긴 물건을 찾아야 하는 것과 같다.
23. 깨치기를 기다리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라.
: 공부를 지을때는 깨치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는 사람이 노상에 멈춰있으면서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끝내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반드시 걸어가야 도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깨치기를 기다리면 끝내 깨치지 못하며, 다만 반드시 급하게
다그쳐서 깨치게끔 해야 한다.
크게 깨칠 때는마치 연꽃이 홀연히 피는 것과 같고 큰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꿈에서 깨어나길 기다리지 않아도 잠이
깊이 익으면 저절로 깨어나고, 꽃을 피우지 못했어도 시절이 이르면 저저로
피게 되듯, 깨침은 기다리지 않아도 인연이 모일 때 저절로 깨치게 된다.
나는 말한다.
'인연이 모일 때'라 하는 것은, 화두하는 마음을 진실하고 간절하게 해서
깨치게끔 급하게 다그치다 보면 인연이 모일 때 깨친다는 말이지, 인연이
모일 때까지 깨치기를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깨칠 때는 구름을 열어제치고 하늘을 보는것과 같아서 휑하니 넓어
의지할 것이 없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도는 것은, 또 다시 한번 뒤집어진
경계이다.
24. 참선에 필요한 네 가지 태도
: 공부를 지을때는 긴장(緊張), 바름(正), 면밀(綿密), 융활(融豁)해야 한다.
긴장(緊張)이란,
사람의 목숨이 호흡에 달려 있어서 큰 일을 밝히지 못했으면 한 입의공기를
들이마시지못하는 순간, 앞 길이 아득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古德이 이르시기를,
"삼으로 꼰 노끈에 물이 묻으면 한 걸음 걸음녀 한 걸음만큼 조여지는 것과
같이 하라."고하니라
바름(正)이란,
학인이라면 반드시 공부하는 방법을 간택할 수 있는 눈을 갖추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3700분 조사들에게는 대체로 본보기가 있었으니, 만약
터럭만큼 어긋나도 삿된 길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기를,
"오직 이 하나만 사실이요, 나머지 둘은 참된 것이 아니다." 라고 하니라.
면밀(綿密) 이란,
눈썹을 허공에 묶어 놓으면, 눈썹과 허공사이의 틈새는 가는 바늘로 찌르려
해도 찌를 수 없고 물로도 그 틈을 적시지 못하듯, 공부에 터럭만큼의 간격을
두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간격이 있으면 마의 경계가 그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古德에 이르시기를,
"화두가 잠시라도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니라.
융활(融豁)이란,
세계가 一丈만큼 넓으면 古鏡도 일장만큼 넓고, 고경이 일장만큼 넓으면,
화로가 일장만큼 넓으니, 결코 한 곳에 머물기를 집착해서 죽은 뱀 머리를
꽉 잡고 있지 말며, 또한 兩頭에 떨어져 마음이 어지럽게 하지도 하지 말라.
古德에 이르기를,
" 원만하기가, 큰 허공과 같아 부족함도 없고 남음도 없다." 고 하니라.
참으로 융활한 곳에 이르면, 안으로는 몸과 마음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는 세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렇게 되야 비로소 머리를 들이밀
수 있다.
마음을 바짝 조여서 공부하되 방법이 바르지 못하면 애써도 헛수고 일 뿐이요,
방법이 발라도 조이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
들어간뒤에는 반드시 면밀해야만 상응할 수 있고, 상응한 뒤에는 반드시
융활해야 비로소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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