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난 무여 스님은 “종교는 둘째치고 누구나 하루 10분씩 참선을 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고 했다. [봉화=프리랜서 공정식]
부처님오신날이다. 2500년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석가는 세상의 진리를 먼 데서 찾지 않았다.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부처의 마음,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은 무한경쟁에 짓눌린 현대인에게 여전히 큰 힘이 된다. 일반인 대상의 시민선방이 최근 늘어나는 이유다. 일례로 2002년 도입된 ‘템플스테이’의 경우 매년 참가자가 30%가량 증가하며 지난해 200만 명에 근접했다.
매월 셋째 주말엔 철야 참선법회
경북 봉화 문수산 자락에 있는 축서사는 시민선방들 가운데서도 인기가 높다. 딱딱한 법문 대신 실제 참선 수행을 강조한다. 맑고 고요한 선(禪)의 기쁨에 초점을 맞춘다. 매월 셋째 주말 여는 철야 참선법회에 120∼150명 정도 참가한다. 벌써 7년째다. 서울·경기도는 물론 부산·대구 등 전국에서 찾아오는 선객(禪客)들이다. 최근에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남성의 비중이 늘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도 찾아온다. 절문을 일반인에게 활짝 연 축서사의 큰 어른 무여(無如·73) 스님을 14일 찾았다. 1년 중 가장 기쁜 날을 앞두고 절집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일반인을 위한 참선법회를 개설한 이유는.
“출가 직후 20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녔다. 씨름하듯이 참선에 올인했다. 오직 화두(話頭)뿐, 그런 20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부처님 위주로 살지 말고 중생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불교가 스님의 종교는 아니지 않은가.”
-도시에서 먼 곳인데, 잘될 걸로 봤나.
“안 되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도시든 산중이든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참가하느냐가 중요하지 장소는 문제될 게 없다.”
-현대인에게 참선이 실제 도움이 되나.
“참선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안 하면 자기 손해인 거다. 요즘 돈돈 하는데 돈 자체는 큰 괴로움이다. 선과 잘 섞여야 돈이 행복으로 변한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 보람, 긍지도 참선을 해야 느낄 수 있다. 과장이 아니다.”
- 일반인도 깨달을 수 있나.
“물론이다. 다만 간절히 진심을 다해 성심성의껏 해야 한다. 누구나 고요하고 편안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깨달음에는 고하의 구분이 없다. 그게 불교의 요체다.”
대학서 경제학 전공하고 늦은 출가
스님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출가했다. 1987년 처음 축서사에 왔을 때 절은 빈 절과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축서사가 경관 빼어나고 수행 환경 좋은 곳으로 탈바꿈한 것은 순전히 스님의 올곧은 언행 덕분이라는 평가다. 그런 만큼 스님은 화두를 들고 하는 간화선(看話禪)의 신봉자다.
-몇 년 전 출간한 『쉬고, 쉬고 또 쉬고』를 보면 반드시 화두 참선만 고집하지 않는 것 같다.
-염불선의 효과는.
“잘만 하면 몇 시간 만에 고요하고 맑은 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면서 ‘석가모니불∼’ 하고 말한다. ‘불∼’을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길게 빼면서 소리와 마음에 집중토록 한다. 선의 기쁨을 맛봐 염불선에 폭 빠지면 누군가 나를 보는 놈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경지가 찾아온다. 그때 화두를 드는 거다. 바쁘고 복잡하게 사는 현대인들이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축서사의 철야 참선법회는 2007년 PC통신 시절 ‘유니텔 불교동호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시작됐다. 핵심 멤버 김준영(53)씨 등이 전국의 시민선방을 섭렵한 후 무여 스님에게 지도를 청했다. 참가자의 70%가 단골 회원이다. 연인원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1만 명 넘게 축서사를 찾았다. 그만큼 참선의 저변이 두터워진 셈이다.
북에 참선 보급하면 핵장난 안 할 것
스님께 초파일 법어를 청했다. 스님은 또다시 참선 예찬론을 꺼냈다. “북한에도 참선이 보급되면 핵 가지고 장난치고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굳이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루에 한 시간, 안 되면 10분이라도 참선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조용하고 맑은 마음의 기쁨을 얻는 거라면 그게 참선이든 명상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다.
봉화=신준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