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혹시 부처나비라고 들어보셨나요?
이 나비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나비인데, 인도에서 이름을 '고타마(Gotama)'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고타마'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姓)이기 때문에
우리 말로 옮기면서 '부처나비'.. 이렇게 된 것입니다.
또 '부처사촌나비'도 있더군요.
부처나비랑 무늬가 비슷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좀 다른 나비..
이런 거 보면, 학자들도 유머감각이 좀 있는 거 같습니다. ^^
어쨌거나.. 이렇게 부처님의 성은 고타마 였고..
이름은 '싯타르타' 였습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다 이루는 분'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죠..
하기야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어디 이름을 함부로 지었겠습니까?
그 나라에서 가장 이름을 잘 짓는 사람을 불러다 지었겠죠..
그래서 출가하기 전 부처님의 이름은 '고타마 싯타르타' 였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라는 말은.. 원래 인도말로 '샤키아 무니(Sakya-muni)'입니다.
인도 여러 부족 중에 샤키아족이 있는데 부처님은 바로 그 부족 출신이었습니다.
'무니'는 성자(聖者)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샤키아 무니라는 말은 '석가족 출신 성자'라는 뜻이죠.
이 '샤키아 무니'를 한문으로 옮기면서 '석가모니(釋迦牟尼)'로 적은 것이고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서가모니'라고 발음합니다.
마치 반약(般若)이라고 적으면서 '반야'라고 하듯이..
또 '부처'라는 말은 인도의 '붓다(Buddha)'에서 온 말인데,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붓다'를 한문으로 불타(佛陀)라고 옮겼고, 불타가 우리말 '부처'로 된 것입니다.
'탑'도 그렇습니다. 인도말 '스투파'가 한문 솔탑파, 탑파.. 이렇게 되다가 '탑'으로 된 것이죠.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이러죠? '태어나신 날' 이러지 않고..
깨달은 이들은 우리 범부들과 다른 게 많지만, 태어나고 죽음도 확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 범부들은 지가 죽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죽어 가고
태어날 때도 업식(까르마)에 끌려 정신없이 태어나지만,
깨달은 이들은 항상 아주 명료하게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유지하여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알고 죽고, 심지어 죽는 싯점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또한 태어날 때도, 언제 어디로 어떻게 태어날 것인가를 선택해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저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 내원궁에 계시다가
'이제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중생구제를 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시고
마야왕비와 정반왕을 부모로 선택하여 이 세상에 '강림(降臨)'하셨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하는 겁니다.
뭐 세상에 없던 존재가 '쨘~' 하고 불쑥 나타난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올해를 불기 2555년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해로부터 2555년이 되는 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80세를 사셨다고 하니까 사실은 2635년 전에 태어나신 것이지요.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해선 이 정도 알아두시면 될 거 같고요..
그럼 서가모니 부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위해서라면 온 몸을 다 바치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적은 경전을 '본생경(本生經)'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전생, 전생.. 수 없는 전생.. 그 어느 때에 설산동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산동자가 산 속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데, 무척 애를 애를 쓰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가..
그래서 하늘나라 제석천이 이를 보고, 좀 도와줘야겠다 생각하여
'나찰'이라는 귀신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설산동자 근처에서 게송을 읊었습니다. 게송은 일종의 시(詩)입니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니 시 생멸법(是生滅法) 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고 변하나니, 이것이 태어나고 죽음, 생겨나고 소멸함의 진리이니라..'
이 게송을 들으니 설산동자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
그래서 웬 대단한 도인이 나타나셨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도인은커녕 아주 험상궂게 생긴 나찰이 하나 앉아 있어..
'방금 네가 게송을 읊었냐?' 그렇다고 그래.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 뒷 구절이 있는 거 같은데, 그걸 가르쳐줄 수 있겠니?'
'야 야 말도 마라. 난 지금 배가 고파 기력이 없어 아무 말도 하기 싫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 뭐든지 갖다 주마..'
'난 따끈 따끈한 인간의 피, 그리고 살.. 그런 것만 먹는다'
'그래? 그럼.. 나에게 마주 가르쳐 주면 내 몸을 너의 먹이로 주겠다'
'야 이 바보야.. 목숨보다 소중한 게 어딨냐? 그래 그깟 게송 한 구절 때문에 목숨을 버리려고 하느냐?'
'모르는 소리 마라. 옹기항아리를 깨서 금항아리를 얻을 수 있다면, 왜 그것을 망설이겠는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찰이 뒷 구절을 읊어 주었습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 하면 적멸위락(寂滅爲樂) 이니라..'
'생(生)과 사(死)를 초월하면,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있느니라..'
설산동자는 그 게송을 여기저기 나무와 바위, 돌에 새기고 높은 곳에 올라가 나찰에게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때 나찰은 제석천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설산동자를 받아 안전하게 내려놓고
큰 절을 올리며 찬탄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대단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 고행을 하실 적에
정말 몸을 돌보지 않는.. 치열한 수행을 하셨습니다.
옷은.. 저 시체를 쌓던 헝겁 쪼가리 줏어다 걸치고
먹는 건.. 나무 열매나 뭐 그런 거로 때우고.. 그나마도 계속 양을 줄여
나중엔 겨우 새가 먹는 정도 만큼만 먹는 극도의 소식수행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 꼴이 꼴이 아니지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사람 죽었나 살았나..'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도 보고..
장난꾸러기 애들은 오줌을 누기도 하고..
정말 그 당시 모습을 표현한 '고행상'이라는 불상을 보면
핏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고 뼈는 앙상하고..
사람인지 해골인지.. 그럴 정도입니다.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치열한 수행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이와같이 부처님께서는 깨달음, 그 진리를 위해선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다 바치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둘째로, 부처님께서는 무한한 대자대비 보살행을 펼치신 분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전생.. 수 없는 전생.. 그 어느 때에 살타왕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타왕자 삼형제가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호랑이를 보았습니다.
호랑이는 늙고 병들어 기진맥진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새끼들이 일곱 마리나 있었습니다.
큰 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호랑이는 늙고 병들어 발톱도 없고 이빨도 빠졌으니 머지 않아 굶어죽고 말겠구나.
에미가 죽으면 새끼들도 죽을텐데.. 불쌍하구나.."
이 말을 듣고 살타왕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냥 저냥 죽는 것보다는
저 생명들을 살리면서 죽는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왕자는 형들 보고 먼저 가라고 하고는 호랑이 있는 데로 돌아가서
호랑이 옆에 누웠습니다. '날 먹어라..'
그러나 호랑이는 하도 힘이 없어서 옆에 있는 사람조차 잡아먹질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옆에 있는 나뭇가지로 자신의 목을 찔러 피를 내었습니다.
호랑이는 그 피를 빨아먹으며 차차로 기력을 되찾아..
살타왕자를 다 먹고 원기를 회복하였습니다.
이렇게 왕자는 자신의 생명 하나를 희생하여 여덟 생명을 살렸던 것입니다.
무한한 보살행.. 이것이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어렵고 곤란한 지경에 처한 이들을 보면
당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으시고 온 몸을 던져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로히니강 물분쟁 사건이 있었습니다.
로히니 강은 샤카족과 꼴리족의 경계로 흐르는 강인데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두 부족은 서로 자기네 쪽으로 강물을 더 많이 흐르게 하려고 다툼이 일어났고
급기야 두 나라의 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이라도 불사하려는 급박한 상황으로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시고, 부처님께서는 일촉즉발의 그 현장으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왕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이시여, 피하고 물하고 어느 것이 더 귀중합니까?"
"피가 더 귀중합니다"
"그런데 왜 그대는 물을 위해서 피를 희생하려 합니까?"
왕들은 뉘우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고 합니다.
또 코살라국 왕이 카필라국을 멸망시키려고 쳐들어갈 때..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향 카필라국의 비극을 막아보려고
그 대군이 진격해 들어가는 길 위에, 그늘도 없는 고목나무 아래 홀로 앉아 길을 막았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왜 거기 앉아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친족이 없는 것은, 그늘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왕은 군대를 돌렸습니다.
두 번째 공격도 부처님께서 저지하셨으나,
세 번째 공격때는 더 이상 막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인연과보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음을..
또 당시에 사람을 백여명이나 죽인 앙굴리마라가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희대의 살인마, 연쇄 살인범이지요..
그는 스승 부인의 유혹을 거절한 것이 빌미가 되어
그를 파멸시키려는 스승의 삿된 꾀임에 넘어가 그토록 엄청난 악업을 짓고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구제하고자 그 살벌한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앙굴리마라는 부처님을 죽이려고 쫓아갔으나 부처님을 따라잡지 못하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멈추어라.."
"나는 이미 멈추었는데, 그대는 왜 멈추지 않는가?"
"자꾸 가면서 멈추긴 뭘 멈추었다는 것이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는데
그대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언제 멈추려는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앙굴리마라를 구제하시고..
그 후 왕이 군대를 이끌고 그를 잡으러 왔을 때
앙굴리마라는 이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음을 알리시면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당시 인도는 아주 엄격한 신분계급 제도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그러하다는데 2600년 전에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똥 푸고, 더럽고 힘든 일 하는.. 불가촉 천민은
사람들이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근처도 못 오게 했죠..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길을 가다가 그들을 보시면, 그들이 먼저 부처님을 피하더라도,
부처님께서는 몸소 다가가 자애롭게 손을 잡아주시고, 강가로 데리고 가 몸을 씻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한 나라의 엄격한 신분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어찌 보면 혁명과도 같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 편이 되어주신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셋째로 부처님께서는 아주 잘 참으시는..
아니 옆에서 보면 잘 참으시는 거 같지만
사실은 아예 화를 안 내시는.. 그런 분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전생, 전생.. 수 없는 전생.. 그 어느 때에 인욕선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강경에도 이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가리왕이라는 포악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봄 날, 왕은 궁녀들을 데리고 동산으로 소풍을 갔는데
오후에 나른하여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궁녀들이 곁에 없어..
어디로 갔나 찾아봤더니.. 어떤 도인이 하나 앉아 있고, 궁녀들이 그 주변에 모여 앉아
법문도 듣고.. 절도 하고.. 그러고 있는 겁니다.
왕은 은근히 샘이랄까, 질투랄까.. 하여간에 굉장히 못마땅했습니다.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저는 인욕을 수행하는 수행자입니다."
"인욕이라 하면, 참는 걸 말하는 것이렷다? 어디 얼마나 잘 참나 한 번 보자."
왕은 칼을 빼어 들고 인욕선인의 귀를 잘랐습니다. 선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코를 베었습니다. 선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왕은 선인의 두 손목을 끊었습니다. 선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왕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번엔 두 발목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선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제석천이 내려다보니 가리왕이 해도해도 너무해..
그래서 돌 바람을 일으켜 가리왕을 응징하고 천상계의 신비한 묘약을 가지고 내려와
인욕선인을 치료해주어 몸을 완전하게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때에 인욕선인은 자신의 몸을 찢는 가리왕에 대해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크나큰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내어 이렇게 서원하였습니다.
'그대는 내 몸의 수족을 끊었지만, 나는 하루 속히 불도를 이루어
그대 가슴 속에 탐진치 삼독, 분노의 뿌리를 끊어 주겠다.'
이것이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어떠하셨는가?
어느 날 누가 찾아와 부처님께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쌍스런 말들을..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쌩 난리를 피우던 사람이 차차로 잦아들무렵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했는데
손님이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 차지가 되겠는가?"
"그런 건 왜 묻는 거요? 손님이 안 먹으면 그야 도로 내 차지지."
그러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그대가 차려주는 음식을 받지 않겠네.."
상대방이 아무리 욕을 하고 비난을 해도 거기에 응해서 같이 맞장구치고 그러지 않는다면
그 사람 입만 더러워질 뿐, 나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는 나의 마음을 눈꼽만치도 해칠 수 없습니다.
화내는 건 그의 몫.. 그러나 거기에 응해서
내가 같이 화를 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은.. 부처님께서 탁발을 하실 적에..
어느 집에 갔더니 밥을 주기는커녕 온갖 욕설을 하더랍니다.
아마도 외도의 집이었나봅니다. 말도 안 되는 별별 험담과 욕설을 해대는데..
이번에도 부처님께선 아무 대꾸 없이 그냥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보다 못한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구 스승이시여, 좀 뭐라 해주시지 않고 왜 그렇게 당하고만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쪽 마을에선 좋은 선물을 줘도 안 받았거늘
여기서 나쁜 선물을 주는데 왜 받겠느냐?"
무슨 얘긴가 하면, 저쪽 마을에선 누가 부처님을 무지하게 찬탄하였던 것입니다.
훌륭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엄청나게 비행기를 태운 것이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선 그런 말을 들으시면서, 무슨 우쭐한 생각이 든다거나 자만심이 생기거나..
그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처하여서도 마음의 동요 없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시는..
우리같이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으시는..
그런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자, 제가 지금까지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으시는 분, 대자대비 보살행을 펼치시어 모든 걸 베푸시는 분..
그리고 화를 참는 게 아니라 아예 화를 내지 않으시는 분..
그럼 부처님께서는 이 세가지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셨을까?
진리.. 베품과 보시.. 그리고 마음의 평온..
첫째, 진리..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현혹되거나 휘둘리거나 끄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깜깜한 밤중에 길을 갈 때에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두려울 때에
아주 밝고 환한 등불을 만나 우리 마음이 평온을 되찾는 것과 같고..
이것은 마치,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다가 문득 꿈에서 깨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만날 때, 그렇게 우리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집니다.
둘째, 베품..
이 세상은 내 이익만 챙기면서 이기적이고 독불장군식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저 산에 있는 나무를 한 번 보십시요.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 같지만..
저 나무가 뿜어 주는 산소로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으며
내가 내보내는 이산화탄소로 저 나무가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존재들은 싫으나 좋으나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알게 모르게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렇게 연결돼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나무하고도 그럴진대 가까운 주변 사람들하고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렇게 마치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면..
이왕이면 행복하게, 이왕이면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베품이요 나눔입니다. 내가 먼저 베풀고 내가 먼저 나누고..
이것이 바로 행복의 기술입니다. 부처님께선 이것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셋째, 마음의 평온..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요체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을 어찌 행복이라 하겠습니까?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인기가 아무리 높아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을 어찌 행복이라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 행복을 바란다면
돈 잘 버는 방법, 출세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더라도 내 마음만은 늘 평화롭고 즐겁게..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스트레스 팍팍 주는 일이라도 마음만은 늘 편안하고 즐겁게..
그리고 아무리 미운 사람들, 웬수같은 인간들하고 같이 살아야 하더라도 마음만은 늘 안락하고 즐겁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같이..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짜 행복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가지가 꼭 필요한 것이기에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시고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행복의 길을 몸소 찾으셨으며, 그 길을 온 몸으로 보여 주시며,
우리를 그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이시다, 시아본사(是我本師) 이시다..
온 세상에 가장 큰 스승이시다, 나의 으뜸되는 스승이시다.. 이렇게 존경하는 것이며
또 우리는 부처님을, 사생(四生)의 자부(慈父) 이시다..
만 생명의 어버이 이시다.. 이렇게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이러하신 분..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찬탄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새로이 발심하셔서
가일층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가시어
더욱 더 자유롭고, 평온하고, 행복한 삶으로 성큼 다가서시기를
부처님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합장하여 축원드립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서가모니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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