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23. 푼니카

淸潭 2011. 4. 15. 18:15

 

[붓다를 만난 사람들] 23. 푼니카
 
천한 하녀 신분으로 바라문 감화시킨 지혜의 화신
 
2011.04.12 10:10 입력 발행호수 : 1092 호 / 발행일 : 2011년 4월 13일

수닷타 장자 집에서 일하던 노예 출신
어깨너머 듣게 된 법문에 진리 깨달아

 

 

▲삽화=김재일 화백  

 

 

부처님 당시 인도 종교계는 바라문과 사문의 대립 구도였다. 바라문이란 베다를 중심으로 제식위주의 종교 활동을 하고 있던 기존세력이었으며, 사문이란 반(反)바라문이라는 공통된 입장 하에 유물론, 회의론, 숙명론, 요소설 등 제각기 다양한 설을 주장하는 자유사상가들이었다. 부처님 역시 사문 종교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바라문교의 전통적인 가르침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수많은 주장을 앞에 두고 어떤 것이 진정 자신에게 평안을 안겨줄 수 있는 가르침인가 고민하며 방황했다.


부처님을 만난 사람 가운데도 이교도였다가 불교로 개종한 인물들이 많다. 10대 제자로 꼽히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 그리고 캇사파 삼형제는 자신들의 제자까지 모두 이끌고 개종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육사외도 가운데 한 명인 산자야 벨랏티풋타의 제자였다가 불교로 개종했으며, 캇사파 삼형제는 불을 섬기다가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개종한 인물들이다.


특히 후자는 바라문 출신으로 불에 의한 정화의례를 중시하던 자들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후 모든 제사 도구를 강에 떠내려 보내고 1000여명에 이르는 제자와 함께 불교에 귀의했다. 캇사파 삼형제의 귀의 후 부처님은 이들은 데리고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로 들어가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공언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분이야말로 저의 스승입니다.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당시 마가다국은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많은 자유사상가들이 대국의 비호를 받으며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며 활동하던 명망 높은 캇사파 삼형제의 이 고백이 사람들에게 주었을 영향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편, 쿠루국에서 한 바라문의 딸로 태어난 난둣타라(Nanduttarā)는 바라문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목욕, 제화 등을 중시하며 정화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출가하게 되었는데 처음 입문한 것은 자이나교였다. 과거의 악업을 제거하고 새로운 업을 쌓지 않도록 계율을 지키고 혹독한 고행을 실천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른 자유사상가들의 가르침에 따라 쾌락을 즐기기도 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유명한 종교가들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배워온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며 목갈라나에게 신통력 겨루기를 제안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녀의 패배. 이를 계기로 그녀는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된다. 이들 일화로부터 당시의 격동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출가수행자들이 겪었을 갈등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99개 병 물로 채우고 출가 허락받아


차라(Cālā)라는 비구니의 일화에서도 당시 수행승들이 많은 이설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마음의 갈등을 느꼈는지 엿볼 수 있다. 마가다국 나라카마을에 살던 바라문 여성 루파사리는 1남3녀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위인 아들이 바로 훗날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풋타였다. 평소 오빠를 따르며 존경하던 여동생들은 오빠가 따를 정도의 가르침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며 울며 만류하는 많은 친족들을 뿌리치고 출가했다. 그 가운데 차라는 가장 큰 언니였는데, 어느 날 탁발을 마치고 한 그루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삭발했습니까? 당신은 여성출가자 같은데, 어찌 이교를 선택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이런 행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물론 차라의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온 목소리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주장을 접하며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진정 올바른 길인가, 혹시 더 훌륭한 다른 길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오고 가며 접한 이교의 학설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치며 차라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라는 대답한다.


“다른 종교가들은 잘못된 견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보지도 못하고 신봉하지도 못 하고 있습니다. 석가족으로부터 필적할 자 없는 부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모든 잘못된 견해를 뛰어넘는 진리의 가르침을 설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은 후 저는 그 가르침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3종의 명지(明知)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성취되었습니다.”


3종의 명지란 자기 자신 혹은 타자가 과거, 현재, 미래에 생을 반복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그 반복으로부터 빠져나와 재생하지 않는 자각을 얻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 속에서만 평안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하는 차라였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사상 속에서 방황하다 불법과의 만남을 통해 길을 찾아갔던 수행승들과는 달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이후 그 어떤 동요도 없이 다른 종교들이 갖는 교리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이교도들을 불법으로 인도한 여인이 있으니 바로 푼니카이다. 원래 푼니카는 수닷타 장자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였다. 수닷타란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에 기원정사를 건립하여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보시했던 그 유명한 장자이다. 이 수닷타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가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푼니카였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름도 직업도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푼니카는 자신의 어머니가 해 왔던 대로 날마다 강에 가서 물 길어오는 일을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가 세운 기원정사에 머무르며 법을 설하고 계셨다. 푼니카는 오가며 설법을 듣게 되었고, 영특하고 순수한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진리에 눈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악업으로 물들지 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교도 모순 지적하며 불법으로 인도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푼니카는 물을 긷기 위해 강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강물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바라문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예 신분이었던 그녀에게 있어 바라문은 하늘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아무리 성스러운 바라문일지라도 얼음과도 같은 강물의 차가움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는 없었다. 도대체 저 바라문은 이 추운 겨울 아침에 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제 일은 물을 긷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추울 때라도 항상 물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주인 마나님이 몽둥이를 들지도 혹은 욕을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바라문께서는 누가 두려워서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 손발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물속에서 그러고 계신지요?”
그러자 바라문은 대답했다.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악한 행위를 한 자는 목욕을 함으로써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니라.”
푼니카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껏 자신은 주인 마나님의 꾸중과 체벌이 두려워서 혹독한 추위를 참으며 물을 긷기 위해 강으로 들어갔건만, 이 바라문은 자신이 지은 악업의 과보가 두려워 그 악업을 씻어내기 위해 강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푼니카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개구리나 거북이, 뱀, 악어, 그 외 물 속에 사는 다른 모든 생물들은 당연히 천계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도축가, 어부, 사냥꾼, 도적, 사형집행인 등 악업을 지은 그 어떤 사람도 강물에서 목욕만 한다면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만약 이 물살이 당신이 이전에 저지른 악업을 씻어낼 수 있다면 이들은 선업 또한 씻어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당신은 선과 악 이 양자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겠지요.”


차가운 강물 속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목욕을 하고 있던 바라문은 푼니카의 말에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바라문교에서 목욕은 일종의 정화 의례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진리라 여기며 날마다 실천하고 있던 행동이 지니는 모순을 한낮 노예에 불과한 여인으로부터 지적당한 바라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나도 적확한 그녀의 지적. 결국 바라문은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던 나를 당신은 존중할 만한 길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성스러운 여인이여, 이 목욕옷을 당신에게 드리지요.”


바라문은 이제 목욕을 그만 두겠다는 뜻을 보이며 옷을 건넸다. 하지만 푼니카는 사양하며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정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혐오한다면, 다른 사람이 알든 모르든 절대 악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악행을 앞으로 혹은 지금이라도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계율을 받아 지키십시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들은 바라문은 삼보에의 귀의를 맹세했다.


“일찍이 저는 범천의 친족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참된 바라문이며 세 가지 명지를 갖춘 참된 목욕자이며, 학식 풍부한 참된 베다학자입니다.”


▲이자랑 박사
정(淨)과 부정(不淨)의 관념을 중시하는 바라문교에서는 부정을 정화하는 행위로 목욕을 중시하지만, 진정한 청정의 세계는 목욕이 아닌 올바른 심신의 행이 일구어낼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후 푼니카가 99개의 병을 물로 가득 채웠을 때, 수닷타 장자는 그녀의 출가를 허락했고 머지않아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사성계급 제도에서 가장 하위인 수드라, 즉 노예 계급의 그녀였지만, 강물을 길어 물병을 채우듯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지혜롭게 내면을 채워간 푼니카였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