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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淸潭 2011. 2. 22. 13:53

[김대중 칼럼]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김대중 고문

정권 함께 이끌 '제갈공명'들이 누군지
시대적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청사진 열어 보여야

한나라당박근혜 전 대표가 201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국민에게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를 보여줘야 한다. 그가 여·야 통틀어 격차 큰 선두주자이기에 국민의 입장에서 이런 주문은 절박하고 현실적이다. 박 전 대표는 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감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가 대통령이고자 하는 2010년대 중반의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그 시대는 미국중국이 세계를 양분(兩分)하는 G2의 시대가 될 것이다. 미·중 관계는 단순히 경쟁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냉전시대로 이행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서의 패권주의는 이미 가동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의 신년연설을 통해 '신(新)스푸트니크' 정신을 강조하며 중국의 도전에 대응할 태세를 천명했다. 중국은 미국과 쌍벽을 이루려는 대국굴기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환경·에너지·정보통신 등에서 갖고 있는 첨단기술을 더한층 갈고닦아 일본 경제를 반드시 부활시킬 것"(작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보고서)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적, 경제적, 지리적, 군사·안보적으로 그 3국 사이에 낀 한국의 진로는 사뭇 불안하다 못해 위태롭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 김정일 집단의 와해 내지 붕괴의 경우다. 김정일의 건강, 식량위기 등 경제의 파탄 그리고 인민의 깨어남과 주도세력 간의 알력 등은 앞으로 3~5년에 북한에 중대한 변화가 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 등 중동에서 보듯이 민중 파워는 세계적 추세를 이루고 있고, 북한 역시 언제까지나 무풍지대에 남아 있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구, 복지의 확대와 건전한 재정 간의 충돌 등 선진화에 따른 국내 문제와 사회적 계층 간의 갈등요소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도층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다가오는 세계는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도모해야 하는 싸움터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직책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 시대의 대통령직(職)은 단순히 여론조사에서 높은 인기도를 누린다고 해서, 또는 경쟁자보다 득표력이 강하다고 해서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음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시대성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구현해내는 의지와 지력(知力)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국민과의 양(兩)방향 소통을 통해 이뤄내는 정치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관점에서 박 전 대표는 이제 국민에게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구체적 자신감과 청사진을 하나씩 열어 보여야 한다. 자신의 정권을 함께 이끌어갈 '제갈공명'들은 누구이며,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깊이 있는 내용을 들고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박 전 대표 진영은 지난 연말 그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을 구성하고 대권 도전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 구성에서 우리의 차세대 먹을거리인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였다.

현안 문제에서 번번이 현직 대통령의 책임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전략이 못 된다. 발언이 문제가 되면 측근들이 나서서 "그런 뜻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발을 빼는 모습도 그렇다. 단답식(單答式) 패턴과 '장막 뒤의 정치'로는 박 전 대표의 참모습을 읽을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진정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숙고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한두 차례 스파링으로는 안 된다. 시대적 상황을 통찰하고 거기서 해답을 찾는 '큰 그림의 해결사'임을 보여줘야 한다. 모든 현안의 고비에서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소신을 밝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치러지는 총선은 이제 1년 정도 남았다. 현재 한나라당의 리더십 불화와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감안하고 국민의 욕구와 불만의 정도를 고려한다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우리의 정치는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시기에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운 여소야대(與小野大) 또는 여청야원(與靑野院·청와대는 여당, 국회는 야당)의 구도로 갈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까지 함께 끌고 가야 할 책무가 있다. 집권세력으로서의 동력(動力)을 잃으면 대통령은 되나 마나다. 박 전 대표의 첫 대선 관문은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정치력을 입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