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산악 그랜드슬램’도전 북극점 가는 박영석씨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산악인 박영석 씨(42·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OB). 그는 마지막 남은 북극점 원정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박 씨를 출발을 이틀 앞둔 22일 숨바꼭질하듯 만났다. 새벽에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아파트로 찾아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구로구 구로동 고려대병원에 간다며 집을 나서는 그를 따라 택시 안에서 얘기를 이어갔다. 천하의 ‘강철 인간’ 박영석이 어디가 아픈 걸까.》
“20년 넘게 해외 원정을 다니다보니 크게 다치지 않고선 병원에 간 적이 없어요. 그러다 회사에서 하도 닦달하는 바람에 지난해 처음 종합검진을 받아봤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인의 몇 배나 됐습니다. 섭씨 영하 50도가 보통인 북극 원정에 대비해 체중을 10kg 이상 불려서 그런 것 같아요. 북극 얼음 위에서 한 보름 뒹굴다보면 금세 정상 수치로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겁이 나잖아요. 처방도 받고 주의사항도 들어보려고요.”
히말라야 원정 때 해발 5300m 베이스캠프에서 소주를 마시고 산소가 평지의 40%도 채 안되는 해발 7000m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그다.
“나이 드는 것은 속일 수 없나 봐요. 이번 원정에서는 대원들 모두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불혹을 넘긴 나이, 몸도 예전 같지 않다면 이제 험한 오지는 그만 다니고 편히 살만도 하다. 넌지시 은퇴 같은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보고 쉬라고요? 걱정된다고 했지 언제 못 다닐 정도라고 했나요”라며 대번에 얼굴이 벌게진다.
“히말라야 고산만 다니다가 2003년 처음 북극점 원정에 나섰는데 산하고는 많이 다르더군요. 영하 50도이던 기온이 금세 영하 20도가 되는가 하면 얼음은 얼마나 잘 깨지던지…. 워낙 위험한 곳이고 그랜드슬램을 완성하는 도전이니까 몸도 마음도 새롭게 가다듬겠다는 거예요. 체력은 문제없다고요.”
북극점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 2003년 첫 번째 원정은 실패했다. 그는 실패 이유를 정보부족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1월 남극점 원정에 성공한 뒤 예정했던 에베레스트 재등정 계획을 취소하고 북극점 원정 준비에만 매달려 왔다. 지난해 8월엔 베이스캠프를 차릴 캐나다 레졸루트(북위 74.9도)에 직접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북극점 원정대는 모두 7명. 이 중 100kg이 넘는 썰매를 끌고 북극점까지 직선거리 780km(실제거리 2000km 이상)를 걸어야 하는 탐험대는 박 씨를 포함해 4명.
“정예 멤버만 모였어요. 대원이 많으면 힘을 써야 할 때(얼음산인 ‘난빙’ 통과 등)는 도움이 되지만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대원이 있으면 정말 피곤해요. 막내(정찬일 대원)만 빼고 모두 저하고 몇 번씩 히말라야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후배들이에요. 훈련을 혹독하게 했는데 모두 잘 따라줘 믿음직합니다.”
박 씨는 원정 중 대원들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대원들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원망을 듣기도 한다.
“26세부터 등반대장을 맡아 왔어요. 대장의 판단에 대원 전체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동안 7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었어요. 대장이 고집 피울 땐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대원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해요.”
박씨에게는 동갑내기 아내(홍경희 씨)와 아들 성우(15), 성민 군(10)이 있다. 가족들은 위험한 곳만 찾아 떠나는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젠 포기했겠죠 뭐. 지난해 10월엔 두 아들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다녀왔어요. 집사람이 자기만 빼놨다고 좀 삐쳤지요. 부모님이 걱정이에요.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정을 떠날 때면 가지 말라고 현관에 드러누우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모른 체하고 집을 나설 때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죠. 누나 3명이 뉴질랜드에 삽니다. 부모님이 거기 가 계셔서 20일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박 씨는 24일 캐나다 현지로 떠나 3월 5일 워드헌트 섬(북위 83.2도)을 기점으로 북극점 원정에 나선다. 도착 예정일은 5월 6일. 북극점을 밟으면 박 씨는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도달)’의 주인공이 된다. 북극점은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씨(62·이탈리아)조차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실패한 곳.
그랜드슬램 대기록을 세우고 나면 또 갈 곳이 있을까? “무궁무진해요, 세계지도를 펴 놓으면 가슴이 뜁니다. 일단 북극점에 갔다 와서 하나하나 풀어 놓을게요.”
박 씨는 이미 북극점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원정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전창 기자 jeon@donga.com
▼히말라야 7차례원정…요트세계일주…정예만 모인 북극원정대▼
박영석 탐험 대장이 ‘정예 멤버’라고 자랑하는 원정대원들은 누구일까? 홍성택(39·파고다아카데미·장비촬영담당) 오희준(35·영천산악회·식량담당) 정찬일(25·용인대 4년·의료 인터넷중계담당) 강동석(36·미국 공인회계사·행정담당) 전창 씨(40·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기록담당)가 그 주인공. 홍 씨는 용인대에서 유도선수로 활약하다 산 사나이가 된 케이스. 히말라야 8000m급 원정만 7차례나 한 베테랑이다. 오 씨는 1999년 초오유(해발 8021m)를 시작으로 히말라야 8000m급 6개를 등정했다. 막내 정 씨는 지난해 엄홍길 씨가 이끄는 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 로체샬(8400m)을 등반했다. 베이스캠프인 레졸루트에서 행정 업무를 보는 강 씨는 1997년 3년 7개월간의 항해 끝에 요트로 단독 세계일주를 한 바다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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