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라김씨(新羅金氏)의 시원(始源)
신라김씨 시조인 대보공 휘 알지 (大輔公 諱 閼智)의 탄생설화에는 우리민족의 운명을 암시하는 상징성이 매우 깊게 담겨 있다.
시조께서 이 땅에 탄강하실 때의 기록은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오래 되었었으며 유일한 역사기록이라 할 수 있는 <삼국사기 (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확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두 기록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에 의해서 발견되었는가와 그 시간과 계절이 다를 뿐 그 외에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삼국사기>와<삼국유사>의 기록을 차례되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 65(탈해 9)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서편 시림(始林)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거기 나뭇가지에 금빛 나는 작은 궤가 걸려있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그대로 고하자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궤를 가져다 열어 보니 그 속에 조그만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데 그 외보가 출충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좌우에 일러 가로되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준것이 아니냐" 하고 거두어 길렀다.
차차 자람에 총명하고 지략(智略)이 많으니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金櫃)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 이라 하고 또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이라 하여 국호(國號)를 삼았다."<삼국사기(三國史記)>"영평(永平:後漢 明帝의 年號) 3년 경신(서기 60년 : 혹은 中元 6년이라고 하나 이것은 잘못인 것이 중원은 2년밖에 없다)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가는데 크고 밝은 빛이 시림(始林 : 鳩林)의 하늘로부터 땅에 뻗치어 그 구름 속에 황금색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큰 광명은 궤 속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이 모양을 보고 호공이 이것을 그대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숱에 나가서 그 궤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赫居世)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를 "알지" 라 이름하였다.
알지는 우리말로 아이를 뜻한다. 왕이 그 아이를 안고 궁으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기뻐하면서 춤을 추고 뛰어 놀았다.
왕이 길일을 댁하여 태자로 책봉했으나 알지는 그 자리를 파사대왕에게 물려주고 왕위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 이라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김씨는 알지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삼국유사(三國遺事)>.
이 사서의 기록을 보면 우선 탄강의 시간대가 5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찾기에는 불가능하고 봄과 가을의 계절, 즉 시간이 다른 점은 주목할 일이라고 본다.
하나는 씨뿌리는 계절이고, 다른 하나는 수확의 계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크게 상반되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신라의 역사나 김씨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삶의 족적에 대한 상징적 암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하겠다. 대보공이 출현한 시기는 신라가 건국하고도 1백여 년이 지난 시기이다.
공은 바로 왕위에 나아가지 않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7세손 미추가 왕위에 나아가고 또 그 뒤 1백여 년이 지난 뒤인 내물대왕에 이르러 김씨의 왕위 세습의 시대가 비로소 열린다.
또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대통합의 결실을 맺게 되는 주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신라김씨는 개국이나 건국 등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과 결실과 수확의 성격을 보여주는 두 가지 의미가 다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보공의 탄생을 단순히 김씨의 시조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당연히 3월(봄 : 파종, 시작의 개념)의 상징이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한 3월과 새벽이라는 시점이 그것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새벽에 닭울음 소리를 듣고 금궤를 발견하게 되니, 어두운 밤에 닭이 울고 있음은 새벽을 알림이요 새벽은 밤의 어두움을 열고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던가! 그러나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면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호공에 의해 금궤가 발견된다. 여기서도 우리는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반 범인이 아닌 왕의 손에 의헤 금궤가 열려졌고, 누워던 아이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 스스로 바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혁거세대왕(赫居世大王)과 탈해대왕(脫解大王)의 탄생설화와 달리 이미 지혜와 그것을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출현하였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수확과 결실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의 상징적인 사실을 보면 신라김씨의 생명력이 지닌 특성을 단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한 특성은 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와 조선의 모든 시대에 걸쳐 신라김씨의 인물들이 보여준 생존 방식과 역량, 남긴 족적들에 잘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보공의 탄생에서 신라김씨의 생명력이 지닌 특성을 두 가지 기록에 나타난 상징적인 암시, 바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원형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후예들이 살아온 2천여 년의 유구한 삶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보여준 특성은 바로 대보공의 탄생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예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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