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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의 좌파(左派)와 우파(右派)

淸潭 2007. 10. 6. 17:48
美國의 좌파(左派)와 우파(右派)
"美國의 미래, 愛國心과 宗敎 강조하는 보수우파 존폐와 직결"

 

한국의 左右대립은 미국 상황과 차이점(差異點), 유사점(類似點)을 동시에 갖는다. 세계사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지독한」 친북좌익과 싸워 이기기 위해 보수우파가 필독(必讀)할 책이 있다. 이주영 건국대 교수가 쓴 《미국의 좌파와 우파》다. 두께도 얇아 읽기도 편하다. 그러나 내용은 초가을 고등어처럼 푸짐하기만 하다.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미국의 좌우(左右)를 이해하려면 미국이 『자유인(自由人)들로 이뤄진 자유사회(自由社會, liberty society)에서 출발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미국은 애당초 군주, 귀족, 성직자와 같은 세습적 특권층이 없었기 때문에 봉건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민주혁명이 필요 없었다』며 『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크게 두 가지 가치(價値)에 동의해왔다』고 설명한다.

그 첫째는 《개인주의(個人主義)》에 대한 신념이다. 미국인은 개인주의 정신을 토대로 평등권·공화제·法의 지배·대의제(代議制)·사유재산·인권·언론자유를 구현할 제도를 확립했다.

두 번째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倫理)》였다. 이는 청교도(puritan)와 장로교도(presbyterian)들에 의한 칼뱅주의 교리로서 근면·자조·절약·도덕의 생활을 강조했다.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시간이 흐르며 「미국적 가치(American Values)」로 자리 잡고, 「미국적 생활방식(American way of life)」을 형성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유방임적(laissez-faire)」인 것이었다. 정부는 각 개인이 자유(自由)로울 수 있도록 간섭(干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국사회 자체가 공산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全體主義)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대공황으로 진보좌파 등장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개입(government intervention) 또는 국가통제(state control)의 방식을 받아들였다』며 『이로 인해 개인주의적 가치를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가치가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뉴딜정책은 정부자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공공사업(public works)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 교량, 공공시설 등의 건설(建設)과 보수(補修)에 매년 수십 억 달러의 예산을 들였고,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테네시계곡 개발공사(TVA)였다. 「와그너法」을 제정해 기업에 맞선 노동조합을 합법화해주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금주법(禁酒法)」을 폐지해 술의 자유 판매를 허용했다. 뉴딜정책으로 프로테스탄트적 가치는 세속적 가치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한다.

저자는 『뉴딜정책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노동자, 농민, 흑인, 노인, 여성과 같은 비주류 사회세력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이들은 진보적 지식인과 자연스럽게 「뉴딜연합세력」을 형성,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사회에서 드디어 진보좌파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60년대, 신좌파(the new left)세력 등장

1960년대 들어서는 혁명적인 「신좌파(the new left)」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기성체제 타도를 정당화할 수 있는 혁명사상은 다 받아들였다. 新마르크스주의, 無정부주의, 트로츠키주의, 흑인민족주의, 공동체주의, 히피사상, 여성해방운동, 동성애사상에 빠졌다. 중공의 모택동, 중남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같은 제3세계 혁명가들을 본받으려 했다.

1961년~1968년 케네디·존슨의 민주당 행정부 아래서 진보좌파 이념은 절정을 이루게 된다.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wer), 동네개발사업(Community Action Program), 양육비지급사업(AFDC) 등 복지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혁명으로 방향을 돌린 신좌파

1970년대 들어 신좌파는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으로 방향을 돌린다. 시위와 게릴라 활동을 언론계, 학계, 문화계로 옮겼다. 과거의 혁명이념을 폭력(暴力)이 아닌 평화적(平和的)으로 이루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들은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원리에 토대를 둔 공동체사회를 꿈꿨다. 또 마약의 사용, 성의 해방(liberated sex)이 강조됐다.

저자는 『신좌파 세력의 문화혁명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수십 년간 교수, 문인, 예술가, 영화인, 언론인 등 문화엘리트(cultural elite)로서 권력을 행사하면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문화와 「성(性)혁명」과 「마약(痲藥)혁명」의 세속주의(secularism)문화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파괴되고, 미국사회는 그들이 의도했던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신좌파는 때론 脫근대주의(postmodernism; 자본주의 아래 산업화, 기계화로 잃어버린 인간의 자연적·원시적 본능을 되찾기 위해 근대화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와 多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소수인종과 소수세력의 문화가 존중되는 문화적 다양성 강조하는 것)로 분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본질은 언제나 좌파적이었다.

문화전쟁, 보수우파를 만들다

신좌파가 제시한 대항문화(counterculture)는 기존의 전통문화(cultural heritage)와 충돌했고, 소위 문화전쟁(cultural war)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사회에는 진보파와 보수파,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두려움은 신좌파와 경쟁관계에 있는 보수적인 중상류층에서 일어났고, 분노는 신좌파를 새로운 압제자로 생각하게 된 중·하류층에서 일어났다.』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로 불리는 이들, 상류층의 생활을 하면서도 소수세력을 대변한다는 신좌파의 위선은 중·하류층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보수의 반격, 「自由의회생존의원회」 등

70년대 중반 공화당 소속 정치인과 보수적 지식인들은 진보좌파세력에 대항할 보수우파세력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폴 와이리치(Paul Weyrich)같은 이는 「헤리티지재단」을 활성화시킨다. 「自由의회생존위원회」를 통해 보수적 정치인들이 당선되도록 선거자금을 모아주고 유권자들을 설득시켰다.

하워드 필립스(Howard Phillips)는 1975년 「보수주의자 협의회」를 조직해서 보수적 정치가들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활동에 나섰다.

존 테리 돌란(John Terry Dolan)은 1975년 「전국보수정치활동위원회」를 조직해서 진보좌파 정치가들의 낙선운동을 벌였다.

리차드 비거리(Richard Viguerie)는 월간지 보수주의 다이제스트를 발행해 신우파의 활동을 널리 알렸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大衆運動)의 형태로도 나타났다. 「국가구원(national salvation)」의 십자군운동은 「뉴딜 이전의 미국(pre New Deal America)운동」을 벌이게 된다. 좌경화(leftization)와 세속화(secularization)를 막고 빈민, 범죄자, 마약중독자, 동성애자의 미국을 청교도, 애국시민, 중산계급의 미국으로 되돌리자는 도덕주의 운동이었다. 진짜 미국, 기독교 국가로서의 미국(Christian American)을 되찾자고 주장했다.

제리 폴웰(Jerry Falwell) 목사의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 팻 로벗슨 목사의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 등이 조직돼간다.

보수우파의 핵심가치, 반공주의

신우파의 주장은 개인주의 가치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간섭주의(干涉主義)와 복지국가(福祉國家)를 맹렬히 비난했다.

신우파의 지원 아래 집권한 레이건은 유세과정에서 「근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s)」고 주장했다. 그는 대폭적인 세금삭감을 주장하고, 분배정책에 반대하는 공급측면경제학(레이거노믹스)를 지지했다.

저자는 『신우파의 핵심가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 즉 반공주의(anti communism)에 있었다』며 이렇게 지적한다.

『신우파는 진보좌파 엘리트가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와 사활을 건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소련과 공산주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진보좌파의 반역행위로 미국이 국제적으로 위기에 몰려왔기에 군사적 우위성을 회복하고, 반공의 기치를 뚜렷이 내세우는 것을 주장했다.』

브리티시 이스라엘리즘의 아마겟돈

70년대 신우파는 80년대 극우파를 낳기도 한다. 이들은 미시간 민병대, 몬테나 민병대처럼 민병대(militia)를 조직, 「제2의 미국혁명」을 추진한다.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s), 제퍼슨주의자들(Jeffersonians)이 이들의 모습이었다.

80년대는 존헤럴(John Harrell)에 의해 조직된 기독교애국안보연맹(CPDL)같은 조직도 등장한다.

기독교 정체성(christian identity)신학으로 불리는 「브리티시 이스라엘리즘(British Israelism)신앙」도 나왔다. 이는 앵글로 색슨존, 즉 미국인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이라는 것이 골자이다. 오늘날 유대인은 금융가(金融家)로서 정치를 조종하는 사악한 세력일 뿐이며, 흑인과 유대인은 모두 그리스도의 적(敵)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들은 유대인,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그리고 로마교황청이 국제연합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the New World Order)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소위 음모론(陰謀論)은 이들의 공통된 코드가 됐다.

80년대 브리티시 이스라엘리즘의 反유대주의(anti Semitism)는 아마겟돈 전쟁론(Armageddon War)과 천년왕국설(Millennialism)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리스도가 평화와 정의로 1천년을 통치할 날이 오기 전에, 미국인들이 그리스도의 적들과 제3차 세계대전을 벌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국력, 보수우파의 유지여부와 직결

저자가 전망하는 미국의 미래는 보수우파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2002년 말 미시간 대학 연구팀이 조사한 세계가치관 조사를 보면 이렇다. 유럽인은 이혼·낙태· 안락사·자살의 권리와 같은 세속적 가치를 중시하는 데 반해 미국인은 국가·종교·가족과 같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은 72%가 내 조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지만, 유럽인은 그렇지 않았다. 신앙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미국적 가치와 미국적 체제를 내세우는 보수우파 전통 때문에 미국이 유럽보다 우경적(右傾的)이라는 반증이다.

저자는 『앞으로 미국이 오늘과 같은 국력과 위신을 얼마나 누릴 것이냐는 애국심(愛國心)과 종교(宗敎)를 강조하는 보수우파 세력이 얼마나 강하게 유지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사회를 근면하고 정력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국민정신은 보수우파가 내세우는 개인주의 청교도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성욱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