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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잃다 (펌글)

淸潭 2007. 3. 19. 16:04
[스크랩]  길 위에서 길을 잃다   2007/03/19 16:03 추천 0    스크랩 0
 원문출처 : 빙하 속의 기억

유난히 바람이 많은 날이다.

길 위에 선다.

이 길의 끝에 네가 기다리고 있어도 좋았고,

날 기다리는 이 아무도 없어

홀로 낯선 거리에 서 있다 해도 또 그런대로 좋았다.

그렇게 매화를 만나러 떠난 길이다.

 

매화IMG_1457.jpg

 

 길 위에서 길을 잃다.

 

어느 여행기의 제목일까?

아니면 유명한 책이름이나 시의 한 귀절일까?

종종 유명 혹은 무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길 위에서 길을 잃다>라는 구절을 심심찮게 발견하고

인터넷에 검색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길 위에서 길을 잃다>라는 제목을 가진 몇 개의 카페들과 블로그.

그리고 그런 제목을 가진 많은 글들과

그 문장이 들어가는 수많은 글들의 숫자를 보면서 미리 질려 버려

두 세곳을 열어 보다가 말았다.

 

오래 전.

맨 처음으로 그 구절과 만났을 때,

나는 도무지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길 위에서 길을 잃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것이 무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길 위에서 길을 잃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길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

길을 잃을 수야 없지 않는가?

길을 잃는 사람은 분명 길 위에 있어야 하는데.....

 

길 위에서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길치인 나는 아는 길도,

자주 다니는 길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잃곤 하는데......

 

길을 나서서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길을 잃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길 위에서 길을 잃다>라는 구절이 그렇게 유명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보면 무슨 심오한 뜻이 담겨 있을 터이다.

나는 아직도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을 짐작할 수 없다.

 

물을 들이키면서도 목이 마르다.

그의 품에 안겨서도 사무치도록 그가 그립다.

여름 태양 속에 서 있어도 춥다.

하는 표현들과는 분명 다르다.

 

길 위에서 길을 잃다는..... 표현은

물을 마시니 갈증이 가시다.

그를 만나 그리움을 풀다.

여름 태양 아래서 일을 하니 땀이 흐르다

하는 표현처럼 특별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내게 있어선

<길 위에서 길을 잃다>는

<나를 낳아주신 분은 어머니다>라는 표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

길을 잃은 사람과

길을 알고 있는 사람.

 

매화 향기를 만나러 가는 남해 고속도로 위에서

길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길 위에서 길을 잃다>라는 구절 때문에

정말 길을 잃어 버릴 지경이었다.

 

길을 잃어 버리지는 않아도,

갑자기 속도를 늦춘 앞차와 충돌할 뻔 하기도 하고,

내 앞으로 끼어들기 하려는 옆 차선의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그 구절을 그렇게 많이 인용하고 있을까?

하마터면 너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도 그만 지나칠 뻔 한다.

 

매화11IMG_1411.jpg

 

유난히 바람이 많은 날이다.

<매화 축제>

너와 함께 매화를 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매화 축제>를 하는 날인가 보다.

 

고속도로에서 하동 톨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매화 축제 행사장> 안내 표지판을 비롯하여

행사에 동원된 주최측의 안내인들.

관광버스와 축제에 참가하려는 인파에 지레 질려서

우리는 먼빛으로 구름처럼 하얗게 산허리를 감싼 매화 향기만

아득하게 만난다.

 

섬진강 하류의 배후습지에 조성된 넓은 갈대숲.

썰물 때일까?

하류의 강바닥이 뻘밭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그곳에도 어김없이 바람이 할퀸다.

아직 겨울 모습 그대로 남아

서걱이며, 서걱이며 속살을 섞는 갈대들.

그 목마른 울음들.

너와 함께 둑 너머의 갈대숲을 무연한 눈길로 바라보며

바람 속에 선다.

 

-잘 살았냐?

 

너는 나를 만나면 늘 그렇게 묻는다.

너는 언제나 내가 부뚜막에 앉혀 놓은 아이처럼 위태롭게 살아 갈 것 같은가?

아니면 바람에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강가의 갈대들처럼

삶에 부대끼면서 매양 마른 울음을 삼키면서 흐느낄 것 같은가?

 

그랬다.

나는 속 상하거나 화 나는 일이 있으면,

울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잊고 살다가도 뜬금없이 네게 전화를 하곤 했다.

나는 투정을 부리듯이,

내 힘든 운명을 고자질하듯이 너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술 마시고 싶어. 술 사줄래?

-하하, 임마. 또 속상한 일 있었구나.

그래, 토요일에 보자. 코가 삐뚤어지도록 사주마.

 

그러나 정작 토요일이 되면,

언제 내가 너에게 전화를 하여 삶을 하소연할 만큼

속상하였던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기에.......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어져 버렸기에.....

우리는 만나야 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런 이유로 우리는 단 한 번도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없다.

 

난 늘 너를 잊고 살다가도

언제나 내가 슬프고, 외롭고, 불행할 때면 너에게 전화를 하였지.

그래서 너는...... 내가 불행했던 시간만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너는...... 나를 만나면 언제나 <잘 살았냐?>고 묻는구나.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네가 나를 만나도

<잘 살았냐?>고 묻지 않을 만큼 행복한 모습을 너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내 삶이 안정되어 있을까?

삶의 거친  바람은 이미 나를 비켜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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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친구.

열 한 살 계집아이가 그 작은 가슴에 너를 담았다.

너도, 계집아이도...... 자기 반의 급장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이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집아이는

네 뒷 목덜미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눈부셔 하면서

네 뒷모습을 아득하게 훔쳐 보곤 했었지.

학교 축구 선수로 운동장을 누비는 너를 아득히 바라보면서

네가 한 골을 터뜨려 주기를 얼마나 가슴 졸여 바랐던가?

그러나 계집아이에겐 네가 터뜨렸던 골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너를 잊으면서 소녀가 되고,

너를 완벽하게 잊고선 청춘시절을 보내고,

너를 가슴에 담았다는 사실마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다른 남자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랑을 배웠지.

너를 담았던 가슴에 다른 남자를 가득, 그리고 쓸쓸하게 담고선.....

 

그러면서 여자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

나로 하여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게 해준 그 사람.

삶의 저 편으로 어느 날 떠나 버리고......

광폭한 운명에 찢기면서

죽지 못해 살아 남았다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 속에서도

가슴 한 쪽은 늘 썰물 때의 갯벌처럼 황량하게 비어 무시로 바람이 드나들던......

가끔은 눈 내리는 겨울 들판을 홀로 걷고 있는 것처럼 춥고 외로웠던 그 무렵에

너를 다시 만났다.

 

그때부터 넌 참 좋은 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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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어느 이른 봄날에도 이렇게 바람이 불었지.

너와 함께 섬진강 나루에서 배를 탄 적 있어.

나는 그때도 너에게 내 힘든 삶을 엄살부리면서 하소연하였어.

늘 친구들과 함께 만났던 우리.

내 엄살이 너무 심했던 탓일까?

그 무렵의 난......

멀쩡하게 잘 살아가다가도

내게 두 아들을 남겨두고선 훌쩍 떠나버린 그 남자만 생각하면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

미쳐 버릴 것 같았어.

운명을, 삶을, 세상을 저주하고 싶었어.

세상은 지옥이었고, 암흑이었어.


-강물이 이토록 맑을 줄이야, 정말 맑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강이라잖아?

 

친구들과 어울려서 만나다가 너와 둘이서만 만났기에 어색했던 까닭이었을까?
너는 뱃머리에서,

나는 배 중간쯤에서 흡사 다툰 사람처럼

서로 그 맑은 강물만 바라보면서 무뚝뚝하게 말을 건네던 이유가?


뱃전에 부서지는 물소리.
술에 얼큰한 사공과 그를 따라 나선 개 한 마리.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늘어진 배에는 두 줄로 나란히 선 젖꼭지가 선명하던 어미 개.

 

-잘 살았냐?
-그럼, 잘 살지 않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사공이었지.

그는 술에 취해서 벌건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몹시 다투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테지.
화개 장터 나루에서 그렇게 강을 건너서 구례엘 갔고,

구례쪽의 나루에 내리자 우리는 할 일이 없었어.

 

우리가 다시 화개로 데려다 달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아니하고 천천히 담배를 피우던 사공.

사공이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기다리면서

너는 젖이 늘어진 어미개의 강아지들과 놀고,

난 그 맑고 잔잔한 강을 보던 시간의 긴 침묵.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그 정적이 얼마나 숨막혔던지 난 실신해 버릴 것 같았지.

아, 사금파리처럼 가슴을 찌르던 이름 하나.
그 서걱이던 이름 하나.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당신과 함께 강을 건너고,

당신이 저 강아지들과 장난하면서......

소리를 죽이고 그림만 남아있는 텔레비젼 화면처럼 그렇게.....

사공이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기다리면서 소년처럼 웃고 있다면......

 

너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손바닥에 손가락 연필을 만들어서 이름 하나.

무심코 적어 보던 날이었지.

 

바람 부는 눈밭을 홀로 걷던 그런 날.
세상의 아무 것도 내게 위로가 되어 주지 못했던 그런 날에도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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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가 그렇게 드문드문 너를 만나곤 했어.

1년 혹은 2년에 한 두번씩.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가르쳐 주었던 너.

남자와 여자가 친구란 이름으로 아름답고 순연하게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해 주었던 너.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그리운 적 없으면서도

생각하면 늘...... 따뜻한 너.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보고싶은 적 없으면서도

기억하면 언제나.....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너.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입대했던 군시절 이야기를 들려 준 적 있다.

그때 난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네가 군 생활을 하던 그 무렵이면.......

나는 이미 사회에 나와 교사 3년차였을까?

만약 그때 너를 다시 만났다면 우리의 운명이 바뀌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늘이 알면 천벌을 받겠다 싶어서 얼른 고개를 흔들었어.

네 아내와 같은 학번으로, 캠퍼스 커플로 만나서 결혼했다는 너.

가끔은 너처럼 멋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가진,

가끔은 너처럼 따뜻한 남자를 남편으로 가진......

그리고 적어도 오래 오래 살고 있는 너를 남편으로 가진

네 아내가 아니 부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부러움마저 하늘이 알면 천벌 받겠다 싶어서

나는 감히 네 아내를 부러워할 수도 없었다.

너희 가정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면서...... 부러워할 수도 없었다.

우린...... 친구니까.

 

그런 너와 함께 매화를 보고 싶었는데

매화 축제를 하는 날이란다.

 

우린 산허리에 구름처럼 감긴 매화를 언뜻언뜻 보면서

섬진강 하류 갈대숲의 바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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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갈수록 세상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싶어 했고,

세상 사람들의 좋은 모습만 이야기하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만약 타인의 미운 모습을 보고,

타인을 험담하면 내 자신이 추해질 것 같아서......

누군가를 흉 보고 싶어도 참고,

욕하고 싶어도 참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나는 너를 만나면..... 내가 보지 않으려고 했던

세상사람들의 미운 모습들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내 가슴 어디엔가 유리조각처럼 박혀 있다가 막 빠져 나온다?

 

-**야, 있지?

내 선배 언니 00는 음식점에 함께 가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맛있는 거. 혼자서 재빨리 먹어 치운다?

한정식같은데서는 귀한 음식은 한 사람 앞에 딱 한 개씩 나오잖니?

이를 테면 소라 삶은 것도 네 사람이면 네 개만.....

그런데 그 언니는 맛있는 거 나오면 두 개씩, 세 개씩 먹어 버리는 거야.

나는 먹는 속도가 늦어서 늘 그 언니에게 맛있는 것은 빼앗기고 속 상해.

 

내가 타인을 막 험담하면 "짜아식." 하면서 싱긋이 웃는 너.

 

-**야, 있지?

 ## 선생님은 정말로 못생겼어.

거기다가 옷도 얼마나 형편없이 입는지 몰라.

화장 안하는 거야 자기 취향이니까 그렇다치고,

머리도 자주 감지 않나 봐.

자신을 전혀 다듬거나 관리하지 않아

정말 못 생긴데다가 마음뽀는 또 얼마나 미운지 몰라.

작고, 뚱뚱하고, 외모도 영 제로인데 뭐라고 한 줄 아니?

내가 보기엔 자기보다 훨씬 나은 다른 선생님을 말야.

못 생겼다고 막 흉보는 거야.

난 그냥 흘려 들은 척 했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우스워서 죽을 뻔했어.

정말 못생긴 여자가 쬐끔 못 생긴 여자를 흉보는데

아무리 웃지 않으려고 해도 속으론 우스웠어.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너는 역시 "짜아식."하면서 싱긋이 웃는다.

 

난 자주 조선 블로그에서 내가 얼마나 힘드는지,

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선 블로그에서 나는 <종이등불>이란 가상인물을 설정하여

내 삶의 돌파구를 만들었을 게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임금님의 긴 귀를 본 동화 속의 사내처럼

야위면서 미쳐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실생활의 주변 사람들은 내 삶을 거의 모른다.

내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고 하소연하면 그들이 돈을 보태어 줄 것도 아니고,

작은 아들 형주가 얼마나 아픈가 이야기하면 그들이 우리 형주를 낫게 해 줄 것도 아니며,

우리 영빈이에 대해서 말하면 그들이 해결해 줄 일도 아니고......

난 가끔 조선 블로그에서 내 삶을 적고 있지만 그건 김은아라는 여자의 삶이 아니라,

<빙하 속의 기억>이라는 가상공간에서만 그 존재의 가치가 있는

<종이등불>이라는 필명을 가진 어느 블로거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초라하게 보이기 싫어서

결코 입밖에 내지 못했던 내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 형주가 계속 좋지 않아.

-친정에 문제가 있었어.

-영빈이에게 문제가 있어.

 

나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버티어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면 너는 "야, 임마. 힘내. 세상 사람들의 삶. 들추어 보면 모두 힘들어. 임마. 웃어봐."라고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 본다.

 

그렇게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난 어쩌면 길 위에서 잠깐 길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로 들어가서

내 가슴을 열고서 너무나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나오지 않았던가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에 박혀 있던

세상을 바라보는 미운 눈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마음들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쌓인 원망과 억울함과 서러움의 가시들이

나도 모르는 새에 빠져 나오지나 않았나 싶다.

 

 매화11IMG_0896.jpg

 

그래.

<길 위에서 길을 잃다>라는 말은......

분명 이유가 있나 보다.

오늘 너와 함께 매화 향기를 만나고 싶었던 날.

그 많은 인파에 지레 질려서 구름처럼 산허리를 감은 매화를

먼 빛으로 만나면서 썰물의 강가에서 마른 속살을 섞는 갈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뜻을 비로소 알 것도 같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그리운 적 없었던 너였지만,

생각하면 늘...... 따뜻한 너.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보고싶은 적 없었던 너였지만,

기억하면 언제나.....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너.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난 비로소 알 것도 같았어.

 

난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따뜻한 축복처럼 잠깐 너를 만났던 거야.

(2006. 3. 11)

 

매화2IMG_0892[1].jpg

1년 전에 쓴 글입니다.

그때, 이렇게 봄날의 아득한 꿈처럼,

하얀 구름처럼  흐드러진 매화 사진을 구하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버 가상공간을 며칠 헤매다가 결국 구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에 무소뿔 선생님 블로그에서

제가 1년 전에 원했던 사진.

아득한 꿈처럼,

구름처럼 흐드러진 매화 사진을 만나고선 탄성을 질렀지요.

 

무소뿔 선생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시면서

틈만 나면 사진 여행을 자주 하시는데요.

특히...... 우포늪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은

한 장 한 장이 그대로 예술이더라구요.

사진의 구도도 어찌나 제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음악도 제 취향과 같고.......

 

흐르는 음악은 Gypsy Voyage입니다.

물론 음악도 무소뿔 선생님의 매화 포스트 배경음악인데,

집시 음악의 거장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연주라고 알고 있습니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는


1960년 9월 9일, 구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었던 몰도바(Moldova) 출신.

첼리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아코디언, 바라라이카(balalaika),

팬 플룻 등과 같은 다양한 악기를 다루기 시작.

5살 아버지와 함께 갔었던 마을 축제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집시 음악의 열정에 매료되어 바이올린을 시작함.

키치네프 음악원에서 클래식 공부함.

레드 아미 오케스트라에 상임 바이올리니스트가 됨.

24세에 몰도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함.


1991년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 캐나다,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함.

유럽과 일본으로 순회 공연 및 캐나다의 CBC 방송에서 고정 게스트로 활동함.

 

1999년 10월 'Gypsy Passion'을 내고 곧 이어

'Gypsy Passion II: Romance'을 냄.


2003년 봄 자신의 레이블 'Scala Disc'를 설립하고

세번째 앨범 'Sergeï Trofanov and his Ensemble, all in a Gypsy Pashion!'을 냄.

그는 집시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상륙함.

그의 음악은 우리 정서에 맞기에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