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 응시한 과거 실패했지만 제법 알려진 시명 덕분에 몇 차례 관직에 나갈 뻔도 했던 시인. 끝내 관운 따르지 않았다. 특히 현종 알현하는 절호의 기회 맞았지만 엉뚱한 시 바치는 바람에 외려 된서리 맞는다. 황제 앞에서 대뜸 ‘북쪽 궁궐로 상소문은 이제 그만 올리고, 남산의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가련다’라는 시구를 읊어댄 게 치명타였다. 딴은 황제 앞에서 자신의 비재(菲才) 겸손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였겠는데 황제는 이를 괘씸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황제 배알의 기회를 마련해준 이가 왕유. (자료출처 : 이준식,성균관대 교수)